2005. 12. 18
오영준 입니다. 그럭저럭 여행이 계속되어 현재는 인도에 와 있습니다.
방콕에서는 여러 일들이 있어서 2주 이상을 체류 했군요.
일단 인도비자가 1주일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방글라데시를 가려 했지만 우리나라가 방글라데시
인들이 국내에서 취업을 못하게 법을 바꾸는 바람에 그에대한 보복으로 한국인은 제 3국에서
비자를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방글라데시 인에게 소개장도 팩스로 받았건만 답변은 너네 나라가서 받으라 입니다.
방글라데시 인들의 국내 취업문제를 잘 알기에 그 현실이 더욱 서글펐습니다.
미얀마는 아직도 육로가 막혀있고 배편또한 알아본 결과 없기에 인도 캘커타로 넘어왔네요.
인도란 여러가지로 매우 기묘한 나라입니다. 다녀온 사람마다 그 경험이 가지각색 입니다.
공통되는 점이 있다면 다들 또 간다는 것이지요.
전 10번이상 다녀온 분들도 많이 보았고 세계여행중에 인도를 지나며 느낀것이 많아 여행이 중단된
분도 보았습니다.
도데체 무엇이 그 많은 사람들을 인도란 나라로 이끄는 것인가..
직접 보고 느끼기 전에는 알수없다고 매번 생각해 왔고 마음의 준비를 해 왔습니다.
인도 도착한지 일주일째.. 아직 인도를 알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지만
어제와 오늘 이틀간 기쁨과 슬픔을 지금껏 여행한 것 모두를 합친것보다 많이 나에게 안겨 주었습니다.
인도는 음악으로 유명한 나라입니다. 동서양의 많은 악기와 음악들이 인도에서 유래 되었으며
현재도 많은 이들이 인도로 음악을 배우러 옵니다.
저또한 그런 음악에 한때 빠진적이 있고 지금도 각 나라의 전통음악을 경험하는 시간을 항상 가지기에
인도에 오자마자 악기점을 찾아가고 연주회를 알아 보았습니다.
우연인지 8일간 열리는 음악축제가 열리고 있더군요.
인도에서는 당대의 최고 음악가에게 최고의 찬사를 칭하는 이름을 내리고 그를 신같이 받들어 모십니다.
이 음악회는 타블라라고 하는 악기의 최고 음악가의 죽음을 기리며 그의 생일날 열리는 음악회 랍니다.
축제는 매일 오후 4시부터 밤 10시 까지 매일 장소를 옮기며 열립니다.
입장료? 40루피 입니다. 1000원 이지요.
6시간 동안 2시간 마다 악기와 주자가 바뀌며 인도음악의 정수를 들려줍니다.
매번 다른 악기의 조합과 다른 음색, 다른 주제를 가지고 한번은 힌두교 신을 찬양하는 노래하기도 하고
한번은 젊은 인도여인의 사랑 이야기를 춤으로 보여주기도 하고 화려한 개인기로 인도악기는
이렇게 연주하는 것이다 라고 자랑하는 듯한 연주를 하기도 합니다.
비록 이틀밖에는 가지 못했지만 하루는 6시간, 마지막 날은 12시간을 점심과 저녁을 먹으면서
공연을 지켜 보았습니다.
그 화려하면서 완벽한 화음 앞에서 전 국악을 시작한 이래로 처음 좌절을 느꼈습니다.
나름대로 국악에 대한 자부심을 키워왔고, 다른 나라 음악가들을 보면서도 전혀 자존심 상한적이 없었지만,
인도음악 앞에서는 우리나라 음악이 초라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감동과 인도음악의 힘 앞에 눈물을 삼켜야 했습니다.
왜 우리나라는 이렇게 멋지게 전통음악을 살리지 못했을까..
왜 이렇게 수천명의 자국인이 와서 열광하는 콘서트를 열지 못할까..
슬펐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인 마지막 피날레 였습니다.
현재의 최고 타블라 마스터가 나온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수많은 음악가에게 둘러쌓인
한 노인이 천천히 걸어나오자 수많은 관중이 모두 일어나 박수와 찬사를 보냅니다.
무대에서는 며칠간 화려하게 음악을 연주했던 최고의 음악가들이 그 앞에 옆드려 손으로
발을 만지려 줄을 섭니다. '저는 당신의 발보다 못한 존재 입니다' 이런 뜻입니다.
국내에 출간된 책으로 신으로 추앙받는 음악가의 최고자리는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직접 그것을 경험한 순간의 감정은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관중들도 그의 발밑에 엎드려 꽃잎을 바치고자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일부는 그의 만수무강을 외칩니다.
그 혼란 속에서 저는 한달전 열렸던 한국의 한 음악회를 떠올렸습니다.
일제 식민지가 한참이던 때에 한국에는 궁중 아악부 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왕실에서 왕을 위하여 연주를 하던 음악인을 양성하는 한국 최고의 음악기관..
비록 일제시대의 혼란기 속에서 일장기를 걸고 연주를 했으며 결국은 조용히 사라졌지만,
그분들의 자부심과 실력은 가히 한국 최고이며 현재 두분이 살아 계십니다.
한국 국악계의 산 증인이신 그분들이 내신 음반은 단 2장, 변변한 연습실 하나없고,
변변한 연주회 하나없이 그분들은 마지막 생을 살고 계십니다.
얼마전 이슈화된 기사와 함께 열린 음악회에 가보지는 못하였지만, 그 음악당은 가본적이 있습니다.
500석 정도 될겁니다.
그 초라하게 대접받는 분들과 극명히 대조되는 인도의 음악가를 보며 또한번 소리죽여 울었습니다.
내가 국악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을 할수 있단 말인가..
국악은 죽어가고 있다. 대답이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그의 연주또한 기가 막힙니다. 연주 기량에 기가 막한것이 아닙니다. 이건 연주가 아닙니다.
수제자 셋을 옆에 놓고 한 리듬을 연주합니다. 그러면 수제자가 그 리듬을 따라 합니다.
거기에 다시 음악으로 스승이 대답을 하면 수제자는 다시 틀린점을 고쳐 간단한 리듬을 또 연주합니다.
그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리듬을 연주하다가 어느순간 협주가 되곤 합니다.
그것이 최고 연주자의 최고 연주입니다.
그리고는 청중들에게 리듬을 가르칩니다. 구음으로 리듬을 불러주고 타블라로 그 리듬을 들려줍니다. 청중들은 그 리듬을 들으며 박자를 맞추어 손으로 호응을 합니다.
그런 광경이 다른 연주자의 연주에서도 언뜻언뜻 보이고는 했는데, 최고 연주자의 연주에서는 대놓고 합니다.
그 시간이 2시간 남짓 이어지는데 이건 음악회가 아니라 제자를 위한, 인도 청중들을 위한 인도음악을
교육하는 자리였습니다.
음악이 사라지고 가사기 잊혀지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고유의 리듬은 국민성으로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살아갑니다.
그것을 인도인은 너무나 잘 알고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연주자가 조금이라도 악기음색이 이상하면 바로 연주를 중단하고 조율을 하는등,
다른나라에서는 경험하지 못할 일들이 많았습니다.
이틀간 변변치 못한 음악지식을 지닌 제 머리에 쏟아진 음악들을 소화못한 상태와 여러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호텔에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는 해금을 꺼내어 밤 11시가 되어가는 시간에 여민락과 수연장지곡을 해 보았습니다.
다행입니다. 아직 저는 국악을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인도가 무섭습니다. 겨우 며칠간 이렇게 많은것을 보고 느끼게 만드는 인도가 무섭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인도여행이 너무나 기대가 큽니다.
- 인도 캘커타에서 영준 -
Posted by Mr. O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