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megazine (kor) Sri Lanka - 2006. 2 .17 -

13 megazine kor

2006. 2 .17

오영준 입니다.

이곳은 스리랑카 'Galle'이란 곳입니다.
전에 매거진을 보내고 나서 비행기를 타고 스리랑카의 행정수도 '콜롬보' 로 왔습니다.

스리랑카도 거진 3주를 여행했으니 중요한 것은 거의 보았네요.

스리랑카는 우리나라 에게는 좀 생소한 나라입니다.
인도를 가는 젊은이는 많아도 스리랑카는 그다지 많이가지 않는듯 합니다.
개그프로에 스리랑카 노동자를 흉내내는 프로가 있으니 가깝다고 해야 할까요..
(이게 뭡니까..? 프로 이지요.)

불교국가인 태국 못지않게 절대다수가 불교도 이며 2000년 이상의 역사가 모두 불교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1500년 부터는 포르투갈,네덜란드,영국에 이르는 바톤 터치식 식민 지배에 시달린 너무 아릅답고 지리상
중요한 요지이기에 고통을 겪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 나라에는 불교와 관련된 유네스코 문화유산만 5개에 이르는 군요. 캔디,담블라,플로나루와,아누라다푸라,시기리아 입니다
(시기리아는 인간적인 욕구가 만들어낸 좀 특이한 곳이긴 합니다.)

그외에 지금 마지막 여행지인 '골'은 1500년 포르투갈이 무력으로 항구를 세우고 요새화 시킨 이래 1930년 독립시까지
외국이 지배한 콜로니얼 시대의 문화유산 입니다.
비극의 역사의 현장인 셈입니다.

스리랑카는 물가가 동아시아 국가중 가장 센 편입니다.
한국과 맘먹는 생필품 가격도 많고 외국인에게는 식민시대의 보복이라도 하려는 듯이 더욱 뜁니다.
문화관광지 입장료가 가장 심한데 내국인의 100배 가격을 외국인에게 요구하니 저에게는 적잖이 고통이군요.

그외에 쓰나미의 상처가 가장 심한 나라중 하나로 곳곳에서 아직도 복구안된 많은 건물과 수많은 쓰레기와 새 무덤들이 많이 보여 마음이 아픕니다.
따뜻하고 풍요로었을 인심도 많이 바뀐것 같아 더욱 마음이 아프지요.

그래도 내륙지방은 쓰나미가 언제 왔냐는 듯이 멋진 자연 경치를 자랑합니다.

섬 여기저에 퍼진 국립공원을 거니는 코끼리는 오래전 부터 나라의 자랑 이었으며 비록 영국인에 의해 처음 재배되고
식민기간 동안 전량이 영국으로 실려간 아픈 역사를 가졌지만 섬 중앙부 해발 2000 미터의 고지를 가득 매운 실론티 농장은 장관입니다.

현재도 식민시대의 장비들이 그대로 쓰이고 있는 철도는 1830년대 실론티 운반을 위해 영국인이 세운 운반수단 이니 괘씸하기만 합니ㄷ.

그외에 또하나의 스리랑카의 자랑이 있으니 사람들의 미소 입니다.
자전거로 여러 나라를 여행했지만 스리랑카 만큼 편안한 웃음을 주는 나라는 처음 입니다. 너무 저돌적인 베트남 식 웃음과는 또다른 느낌 입니다.

특히 자전거로 다니면서 사람들이 던지는 호기심 반 즐거움 반의 웃음은 자전거 여행이 주는 또 하나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차 여행 시에는 좀 강도가 약하더군요.)

자전거로 다니며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버스가 길을 잘 가다가 조그마한 불상 앞에서 속도를 늦춥니다. 몇몇 젊은이가 달리는 차 안에서 뛰어 내리더니 불상 앞에서 절을 하고
시주함에 돈을 넣고는 다시 버스에 오릅니다.
버스는 그제서야 다시 속도를 올립니다.
충격 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나라에 퍼져있는 부처의 보리수 나무는 아누라다푸라에 있는 2200년 된 쓰리마하 부다트리
(인도 부다가야의 보리수 나무의 묘목이 자란겁니다.)와 같은 것이라며 매일 아침 저녁으로 기도를 하며 물을 줍니다.

1500년이 넘은 절의 페허에서도 모자와 신발은 신지를 못합니다.경건한 장소이기 때문 입니다.

비록 불교도는 아니지만 종교의 믿음은 이런것이다란 것을 확실하게 알려주는 경험입니다.

남쪽 해안에서는 쓰나미 위문 차원에서 투명한 바다속에서 스노클링도 맘껏 즐겼군요.
자전거로 길을 가다가 속칭 삐끼라 불릴만한 툭툭(오토바이 택시)에게 반 강제로 글려간 해안이지만 너무 멋져서
끌려가고도 행복 했습니다.

해안에 '한국 청소년 해외 지원단 KOIKA'가 쓰나미 후에 세워준 빌딩이 있어 가슴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물가 비싸서 고생은 좀 많이 했지만 신선한 여행을 원하시는 분에게는 한번 추천하고픈 나라이군요.

다음주면 다시 인도로 갑니다.
이제 속도를 좀 올려서 빨리 한국인 에게는 생소한 이슬람의 나라로 가고 싶습니다.

- 2006. 2. 18 '골' 해안요새 성곽에서 영준 -
추신 : 글을 쓰고나서 성곽안에 위치한 게스트 하우스 주인과 '골'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골'은 단순한 요새가 아니라 동서를 오가는 수많은 교역인들을 보호하고 이익을 취하던 무역항의 전형 입니다.

그때 무역을 하다가 정착한 중국인,아라비아 이슬람인, 유럽인이 어울려 살아가는 복합적인 도시 입니다.

비록 스리랑카의 왕조인 싱할리 왕조가 볼때는 자신의 영토에 박힌 눈의 가시였지만 넓고 험난한 인도양을 가로질러 오던
사람들에게 '골'의 불빛은 구세주 였을 것입니다.
13 megazine kor

2006. 2 .17

오영준 입니다.

이곳은 스리랑카 'Galle'이란 곳입니다.
전에 매거진을 보내고 나서 비행기를 타고 스리랑카의 행정수도 '콜롬보' 로 왔습니다.

스리랑카도 거진 3주를 여행했으니 중요한 것은 거의 보았네요.

스리랑카는 우리나라 에게는 좀 생소한 나라입니다.
인도를 가는 젊은이는 많아도 스리랑카는 그다지 많이가지 않는듯 합니다.
개그프로에 스리랑카 노동자를 흉내내는 프로가 있으니 가깝다고 해야 할까요..
(이게 뭡니까..? 프로 이지요.)

불교국가인 태국 못지않게 절대다수가 불교도 이며 2000년 이상의 역사가 모두 불교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1500년 부터는 포르투갈,네덜란드,영국에 이르는 바톤 터치식 식민 지배에 시달린 너무 아릅답고 지리상
중요한 요지이기에 고통을 겪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 나라에는 불교와 관련된 유네스코 문화유산만 5개에 이르는 군요. 캔디,담블라,플로나루와,아누라다푸라,시기리아 입니다
(시기리아는 인간적인 욕구가 만들어낸 좀 특이한 곳이긴 합니다.)

그외에 지금 마지막 여행지인 '골'은 1500년 포르투갈이 무력으로 항구를 세우고 요새화 시킨 이래 1930년 독립시까지
외국이 지배한 콜로니얼 시대의 문화유산 입니다.
비극의 역사의 현장인 셈입니다.

스리랑카는 물가가 동아시아 국가중 가장 센 편입니다.
한국과 맘먹는 생필품 가격도 많고 외국인에게는 식민시대의 보복이라도 하려는 듯이 더욱 뜁니다.
문화관광지 입장료가 가장 심한데 내국인의 100배 가격을 외국인에게 요구하니 저에게는 적잖이 고통이군요.

그외에 쓰나미의 상처가 가장 심한 나라중 하나로 곳곳에서 아직도 복구안된 많은 건물과 수많은 쓰레기와 새 무덤들이 많이 보여 마음이 아픕니다.
따뜻하고 풍요로었을 인심도 많이 바뀐것 같아 더욱 마음이 아프지요.

그래도 내륙지방은 쓰나미가 언제 왔냐는 듯이 멋진 자연 경치를 자랑합니다.

섬 여기저에 퍼진 국립공원을 거니는 코끼리는 오래전 부터 나라의 자랑 이었으며 비록 영국인에 의해 처음 재배되고
식민기간 동안 전량이 영국으로 실려간 아픈 역사를 가졌지만 섬 중앙부 해발 2000 미터의 고지를 가득 매운 실론티 농장은 장관입니다.

현재도 식민시대의 장비들이 그대로 쓰이고 있는 철도는 1830년대 실론티 운반을 위해 영국인이 세운 운반수단 이니 괘씸하기만 합니ㄷ.

그외에 또하나의 스리랑카의 자랑이 있으니 사람들의 미소 입니다.
자전거로 여러 나라를 여행했지만 스리랑카 만큼 편안한 웃음을 주는 나라는 처음 입니다. 너무 저돌적인 베트남 식 웃음과는 또다른 느낌 입니다.

특히 자전거로 다니면서 사람들이 던지는 호기심 반 즐거움 반의 웃음은 자전거 여행이 주는 또 하나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차 여행 시에는 좀 강도가 약하더군요.)

자전거로 다니며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버스가 길을 잘 가다가 조그마한 불상 앞에서 속도를 늦춥니다. 몇몇 젊은이가 달리는 차 안에서 뛰어 내리더니 불상 앞에서 절을 하고
시주함에 돈을 넣고는 다시 버스에 오릅니다.
버스는 그제서야 다시 속도를 올립니다.
충격 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나라에 퍼져있는 부처의 보리수 나무는 아누라다푸라에 있는 2200년 된 쓰리마하 부다트리
(인도 부다가야의 보리수 나무의 묘목이 자란겁니다.)와 같은 것이라며 매일 아침 저녁으로 기도를 하며 물을 줍니다.

1500년이 넘은 절의 페허에서도 모자와 신발은 신지를 못합니다.경건한 장소이기 때문 입니다.

비록 불교도는 아니지만 종교의 믿음은 이런것이다란 것을 확실하게 알려주는 경험입니다.

남쪽 해안에서는 쓰나미 위문 차원에서 투명한 바다속에서 스노클링도 맘껏 즐겼군요.
자전거로 길을 가다가 속칭 삐끼라 불릴만한 툭툭(오토바이 택시)에게 반 강제로 글려간 해안이지만 너무 멋져서
끌려가고도 행복 했습니다.

해안에 '한국 청소년 해외 지원단 KOIKA'가 쓰나미 후에 세워준 빌딩이 있어 가슴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물가 비싸서 고생은 좀 많이 했지만 신선한 여행을 원하시는 분에게는 한번 추천하고픈 나라이군요.

다음주면 다시 인도로 갑니다.
이제 속도를 좀 올려서 빨리 한국인 에게는 생소한 이슬람의 나라로 가고 싶습니다.

- 2006. 2. 18 '골' 해안요새 성곽에서 영준 -
추신 : 글을 쓰고나서 성곽안에 위치한 게스트 하우스 주인과 '골'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골'은 단순한 요새가 아니라 동서를 오가는 수많은 교역인들을 보호하고 이익을 취하던 무역항의 전형 입니다.

그때 무역을 하다가 정착한 중국인,아라비아 이슬람인, 유럽인이 어울려 살아가는 복합적인 도시 입니다.

비록 스리랑카의 왕조인 싱할리 왕조가 볼때는 자신의 영토에 박힌 눈의 가시였지만 넓고 험난한 인도양을 가로질러 오던
사람들에게 '골'의 불빛은 구세주 였을 것입니다.

밤 늦게 가로등도 거의 없는 좁은 골목길을 다시 거닐어 보았습니다.
한 골목안에 교회가 있고 성당이 있으며 교회를 개조한 절 에서는 한 가족이 불공을 드리고 있습니다.
또 다른 골목에는 교회를 개조한 이슬람 사원으로 하얀 정복을 입은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들어가고 있습니다.

3km 남짓한 좁은 성곽안에 지금까지 공존하는 세계의 여러 문화..
대항해 시대의 살아있는 유산입니다.
유네스코는 이러한 점을 들어 문화유산에 등재 시킨 것입니다.

역사책을 수십권을 보는것보다 한적한 밤에 30분간 실제 역사의 현장을 산책하는 것이 더욱 이해가 빠릅니다.

이것이 바로 문화탐방 여행인 것 같습니다.

밤 늦게 가로등도 거의 없는 좁은 골목길을 다시 거닐어 보았습니다.
한 골목안에 교회가 있고 성당이 있으며 교회를 개조한 절 에서는 한 가족이 불공을 드리고 있습니다.
또 다른 골목에는 교회를 개조한 이슬람 사원으로 하얀 정복을 입은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들어가고 있습니다.

3km 남짓한 좁은 성곽안에 지금까지 공존하는 세계의 여러 문화..
대항해 시대의 살아있는 유산입니다.
유네스코는 이러한 점을 들어 문화유산에 등재 시킨 것입니다.

역사책을 수십권을 보는것보다 한적한 밤에 30분간 실제 역사의 현장을 산책하는 것이 더욱 이해가 빠릅니다.

이것이 바로 문화탐방 여행인 것 같습니다.

Posted by Mr. OH

2006/10/21 21:26 2006/10/21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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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rice tractor used 2008/05/23 04:30 # M/D Reply Permalink

    아주 유용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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