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영부영 시간이 지나간 오래된 일기의 계속 입니다.)
2006. 6.14
파키스탄의 전격적인 방문이후 다시 다람살라로 돌아 왔습니다.
나를 반기는 것은 티벳탄 브레드와 베이비 센터의 아기들 입니다.
나이도 어린것들이 2주 안본 상태이지만 날 보지마자 놀자고 대쉬를 해서 달려오는 것을 보니 봉사활동 할 만 합니다.
절에서도 반가워 하며 망가진 컴퓨터를 잔뜩 늘어놔 주시는군요.
2006. 6. 19
월드컵 매치로 맥그로드 전체가 후끈 달아올라 있습니다.
일주일 후 시작되는 달라이 라마의 티칭을 듣기위해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나라를 응원하며 밤을 지세웁니다.
3개의 극장 (대형TV로 비디오 보여주는 곳)은 대전표를 걸어놓고 밤샘 운영을 합니다.
한국과 프랑스전 이 있는 날..
모든 한국인은 밤 12시 반에 한국식당 '도깨비'로 집결 했습니다.
대형 TV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담하게 프랑스인 3명이 같이 경기 보겠다고 왔습니다. 웃으며 자리 놔줍니다.
이윽고 경기는 시작되고 욕설이 난무하기 시작합니다.
당찬 한국의 아가씨들 입니다.
'아.. 저새끼.. 반칙하네..'
'아.. 저 상태에서 슛을 못해? 아 죽어라 죽어..'
프랑스 인과 몇몇 다른 외국인들 다 긴장합니다.
갑자기..
TV가 나갑니다.
한국인 뒤집어 집니다.
'잘 나오던 TV 가 왜 안나와..!!!!'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고 TV는 케이블이 잘렸는지 먹통이고 지난 폴란드 전에서 한국인이 너무 시끄러워서 인도인이 몰래 잘랐다는 루머를 궁시렁 거리며 다들 흩어집니다.
일부는 다른 까페로 몰려가 끝까지 맥그로드를 시끄럽게 했다는 전설이 지금도 전해집니다.
한국인 시끄러운거 온 세계 사람들이 인정해 줍니다.
6월 25일은 달라이 라마의 티칭이 시작됩니다. 이번에는 대만사람들을 위한 티칭으로 온 숙소는 대만인으로 가득차고 갑자기 숙소 가격이 두배로 뜁니다.
달라이 라마 티칭을 들으러 온 사람은 상관 없겠지만 괜히 여행왔다가 고생하는 사람도 꽤 됩니다.
'달라이 라마'
꽤나 명쾌해 보이는 노인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전혀 신비감 같은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목소리 하나는 정말 그윽하고 듣기 좋습니다. 누구에게나 편안함을 안겨주는 목소리 입니다.
한국말 번역사가 자원봉사 중이지만 영어로 듣는거이 더 쉬울 정도로 고리타분한 불교 설법이라 좀 지루하긴 하군요.
6월 26일과 7월 6일은 달라이 라마의 공식 후계자인 '까르마파' 와 '달라이 라마' 자신의 생일 잔치가 있었습니다.
정말 거창하게 하는 '까르마파'와 간소하게 기념 공연만 몇개 하는 '달라이 라마'의 생일은 좋은 비교가 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들어도 티벳 전통공연은 따분하군요.전통공연을 좋아하는 저 이지만 오래 듣고싶지는 않을 정도로 고리타분 해요.
7월 7일에는 달라이 라마의 티칭도 끝납니다.
티칭과 월드컵이 끝나며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하나둘 맥그로드를 떠나기 시작합니다.
참 미국인과 유럽인 치고는 특이한 사람이 모두 모인 자리 였습니다.
외국인 스님도 꽤 되고 25년간 불교를 공부한 독일인은 항상 유쾌한 유머로 많은 이를 즐겁게 했습니다.
미국인에게 불교를 가르쳐주고 영어를 배우던 젊은 태국 스님은 저의 좋은 친구 였습니다.
다들 그 나라로 돌아가면 참 별난 사람으로 보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달라이 라마의 설법을 들으러 먼 인도가지 왔으니 말이지요..
7월 14일..
티칭이다.. 생일 잔치다.. 베이비 센터 봉사다.. 절에서 컴퓨터 고치고 강좌하랴..
하루가 다르게 시간이 지나가 이제는 그녀가 인도비자가 만료될 시간입니다.
그녀는 비자를 연장하러 방콕이나 네팔로 가야 합니다. 6개월간 요가를 더 배울 예정 이거든요.
이제 또 한번의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어떻게 할래?'
'이제 다시 파키스탄 갈거 아니야? 다시 비자 받으러 넌 델리로 가야지..'
'응...'
'근데 좀 섭섭하다..'
'그렇네.. 우리 좀더 같이 있을까? 그래..!!
내가 원래 네팔 가보고 싶었거든. 네팔에도 문화유산이 두개나 있어. 이거 보러 가야되.
그리고 너 짐이 좀 무거워 보인다. 포터하나 고용하는 것이 좋겠다.'
이리하여..
난데없이 네팔 여행이 계획됩니다.
명목상 인도비자 연장을 위해서 이지만 안나푸르나 등반도 계획에 포함됩니다.
자전거는 절에 맏겨놓고 대부분의 짐은 친해진 네팔사람 집에 맏겨놓고 네팔을 향해 출발 합니다.
저는 명목상 포터 이므로 최대한 짐을 적게하고 그녀의 짐을 몽땅 들고 갑니다.
이렇게 적은 짐으로도 여행이 가능한데 지금가지 가지고 다니는 짐은 다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바로 델리로 출발합니다.
델리의 한국식당에 들리니 주인이 깜작 놀랩니다.
'아니.. 파키스탄은 안가고 웬 여자랑 다시 돌아왔어요?'
'인생살이 다 그렇죠.'
'그러게 내가 다시 올거라고 했죠..'
바로 다음날인 7월 15일.,
네팔로 가기전 바라나시를 들립니다.
바라나시와 네팔 국경은 멀지 않습니다.
이번 인도 여행에서 바라나시는 안가리라고 생각했건만 자전거 없이 올줄은 꿈에도 몰랐군요.
바라나시는 명성답게 신비한 힘을 소유한 도시 입니다.
생각만큼 사진으로 보아온 신비스러운 광경은 없으나 웬지모를 에너지가 넘쳐남을 느낄수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구의 시체를 태우는 화장터 앞에 방을 잡고 그 냄새를 맏으며 '인간의 인생살이 공수레 공수거' 를 몸소 체험합니다.
사람맛을 아는 눈빛이 뻘건 개들이 밤새 짖어대는 소리도 예사는 아니군요.
화장터에서 사람 태우는 냄새는 끊이지를 않는데 잘 먹지는 못하니 미치지요.
아시아 최대의 크기라는 '베나레스 대학'도 들리고 골목길 여기저기 있는 음악학원 탐방에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2006년 7월 21일..
기차를 타고 네팔 국경인 소나울리로 출발 합니다.
바야흐로 우기인 몬순이 시작되는 때..
마지막 인도의 밤에 바라나시는 퍼붓는 비속에 잠깁니다.
길거리는 무릅까지 물이 잠기고 오토릭샤는 모두 물에잠겨 시동이 꺼져 움직이지 못합니다.
가까스로 야간 9시 열차시간에 맞추어 역에 갔것만 열차는 연착..
10시 반 이 되어서야 슬금슬금 들어옵니다.
누가 인도 아니랄까봐..
내일은 인도에서의 세번째 출국 입니다.
네팔에는 무엇이 나를..
아니지. 우리를 기다릴지 기대해 봅니다.
Posted by Mr. O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