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메거진이 귀찮습니다. 근 몇개월 만인지. 이곳 아르메니아 에서 그동안 밀린 메거진을 다 몰아쳐 쓰려고 합니다. 2006. 8. 22 인도로의 재입국은 아주 간단합니다. 손쉽게 새로받은 인도 비자를 가지고 입국을 합니다. 네팔과 인도는 아주 가까운 문화적 동질성을 가져서인지 국경을 넘어도 그다지 변화된 모습은 이제 느끼기 힘들군요. 네팔의 동쪽끝인 카카르비타 국경에서 홍차의 산지 '다질링' 까지는 그다지 멀지 않습니다. 일단 실리구리 라는 큰 도시로 이동을 합니다. 실리구리 에서 출발하는 기차는 오전에 출발한 상태이라 버스를 타고 다질링으로 가는 중간 마을까지 가기로 결정 합니다. 2006. 8. 23 구불구불 산길을 돌아 올라온 마을은 벌써 해발 1300이 넘어갑니다. 몬순 시즌이라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꽤나 춥습니다. 새벽 6시에 이 마을에서 출발하는 토이트레인을 타기위해 일어납니다. '와!! 이게 바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증기기관차 이구나!!' 7시에 마을 정비소에서 나온 기차는 연기를 내뿜으며 우리가 기다리던 역으로 들어섭니다. 120년전 이곳의 감자를 운반할 목적으로 세워졌다는 철도에서 움직이던 증기기관차가 120년간 쉴새없이 움직이고 있는 겁니다. 영국의 증기기관차 역사에서도 비교적 초기에 속하는 자그만한 기종으로 세계에서 아직도 많이볼수 있는 증기기관차 노선을 제치고 이곳이 유네스코에 등재된 이유는 한가지 입니다. 관광 목적의 비정기 노선이 아니라 아직도 일반인을 위한 정기노선으로 운행이 된다는 것이지요. 관광객이 있거나 없거나 이 열차는 일년 365일 꾸준히 산을 오르 내립니다. 차로도 참 힘든 구불구불한 길을 오르는 기차는 멋진 유산 입니다. 일반인은 아직도 300원 정도의 요금을 받고 관광객을 위한 객차는 2000원 정도를 받습니다. 길가던 사람이 기차에 뛰어 탈 정도로 느릿느릿 가는 기차이지만 일반 객차에 탄 학교가는 아이들은 느긋하게 기다리며 즐겁게 떠듭니다. 비는 부슬부슬 내려서 멋진 풍경은 안 보이지만 연기와 석탄재를 내뿜으며 느릿느릿 오르막길을 오르는 객차안에 그녀와 나 단둘이 전세낸 기분으로 앉아 기쁨을 만끽합니다. 역시 비수기에 오는 여행은 남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아.. 하지만 증기기관차는 물먹는 귀신이군요. 30분 달리고 20분 물 채우고.. 처음타는 증기기관차는 너무 손이 많이가는 애물단지 같습니다) 2006. 8. 24 다질링은 다람살라와 같은 산간 마을 입니다. 원래는 티벳 문화권의 땅으로 영국의 점령이후 영국에 의해 중국에서 훔쳐온 녹차가 재배되기 시작합니다. (이때 스리랑카 에서도 재배가 되기 시작했죠) 해발 2000 정도이군요. 우기에는 마을 전체가 이끼에 덮혀있는 것 같이 보이는 습하고 비오고 추운 동네 입니다. 별명을 지어줍니다. 빨갛고 초록의 곰팡이 도시라고.. 일단 다질링에 와서 차 시음을 안하면 재미없죠. 하루종일 온갓 까페와 샵을 돌아다니며 시음을 해 봅니다. 테스트는 거의 공짜 입니다. 차 마시다가 배 터지겠네요. 오후에는 이곳의 티벳 난민센터도 들려 봅니다. 나라를 잃고 행복을 찾아 다른 나라로 도망쳐 온 티벳인이 이곳에서도 300가구 정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옷과 장신구를 만들에 관광객에게 파는 그들은 다람살라 에서 오래 있었다고 하는 우리에게 참 친절하게 대해줍니다. 원래 쇼핑은 잘 안하지만 그녀가 권해준 빨간 티벳 모자를 써 봅니다. 한국의 한복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네요. 역시 티벳과 한국의 문화는 원래 한핏줄 인것 같습니다. 2006. 8. 27 오늘은 다질링의 명소인 동물원과 등산학교를 방문합니다. 동물원은 의외로 시설이 잘 되어있어서 관광객에게 인기가 많고 등산학교는 에베레스트를 처음으로 오른 영국의 힐러리와 파트너를 이루었던 네팔인 '텐진 노르게이'가 초대교장을 했던 유명한 곳입니다. 에베레스트 근처에서 살아가는 세르파 민족인 그는 아주 강한 인물입니다. 에베레스트 정복 아주 이전부터 많은 등반대를 도왔던 그는 진정한 산악인으로 네팔과 인도에서는 영웅시 되고 있습니다. 힐러리도 이 사람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 했을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군요. 2006. 8.29 이제 다시 인도 여행을 할 때입니다. 더 북쪽의 시킴주도 많은 흥미를 끄는 곳이나 우기라 시기가 좋지 않습니다. 다질링의 춥고 습한 기운에 질려서 바로 버스를 타고 다시 실리구리로 이동해 콜카타 행 기차에 오릅니다. 실리구리는 북부 시킴주와 동부 메가엘라주와 신비의 왕국 부탄 (쇄국정책으로 여행이 힘들어 신비하다는 곳이죠) , 방글라데시로 가는 주요 관문 입니다. 메가엘라 주의 독립운동 때문에 시끄러운 곳이지요. 저희가 이곳을 지나고 다음날 시내 주유소에서 대형 폭탄이 발견 되었군요. 음.. 살벌한 동네입니다. 2006. 8. 30 8개월 만에 인도여행의 출발지 콜카타로 돌아 왔습니다. 아.. 여행이란 무엇인지.. 설마 내가 다시 콜카타에 올줄은 상상도 못했지요. 여행자들의 안식처 '파라곤호텔'은 여전히 많은 여행자들로 북적입니다. '어라.. 자전거 한대가 있네. 여행자 껀가보다.' 내일쯤 누가 타고왔는지 물어봐서 이야기나 나누어 보고 싶네요. 2006. 8. 31 콜카타에 다시 온 이유는 한가지. 그녀에게 내가 8개월 전에 맛보았던 인도음악의 감동을 알려주기 위함 입니다. 그녀도 모국에서 많은 인도음악과 댄스 콘서트를 접했다고 하지만 현지의 감동과는 비교가 되지 않지요. 공연 정보도 확인할겸 메일도 확인할겸 들린 한 인터넷 깨페.. 옆자리에 한 동양인이 앉아 있습니다. '일본인인가..' '어라? 한국인이네. 다음까페를 보는구나.' '어라라!! 내가 움직이는 자전거 세계여행 까페에 들어가 있네.' 그 젊은이의 이름은 '박정규'. 인도 여행중이었던 나에게 자전거 세계여행을 떠난다고 도움말 바란다고 메일을 보냈던 한국의 청년 입니다. 인도의 한 인터넷 까페에서 우연히 만나다니.. 흠.. 세상 참 좁습니다. 알고보니 호텔의 자전거가 그의 것이군요. 2006. 9. 4 매일매일이 바쁩니다. 숙소에 머물던 한국인들을 데리고 음악회 찾아다니며 인도음악을 알리느라 바쁘고 각종 영화제도 찾아다니며 문화활동에 매진 합니다. 8개월 전에 다 들렸던 곳이지만 혼자 갈때랑 연인이랑 같이 갈때랑은 또다른 느낌 입니다. 어릴적 부터 좋아해서 동양 최고로 크다는 플라테리움 (별자리 보는 곳)을 8개월전 갔었지만 그녀와 또 가보니 느낌이 참 다르게 와 닿는군요. 자전거 여행 초보이나 참 패기 넘치는 한국의 젊은이에게 여러 조언도 아낌없이 줍니다. 젊으니까 뭐든지 잘 되겠죠. 2006. 9. 6 자.. 이제는 다시 델리로.. 하루 반의 길고긴 기차여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자전거 여행 보다는 매우.. 쉬운 여행이지요. 2006. 9. 10 델리에서는 제가 좀 바쁩니다. 이미 만료된 파키스탄 비자를 다시 받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이제 그녀는 요가 레슨을 위해 요가의 고향이라 불리는 '리시케쉬'로 가야 합니다. 9월 초에 이미 중요한 코스는 시작이라 그녀는 빨리 출발해야 하지만 서로가 아직도 떨어지기 아쉽군요. 제 파키스탄 비자가 나올때까지 델리에서 더 있기로 합니다. 2006. 9. 11 그녀는 저 덕에 델리의 문화적인 요소를 많이 배웁니다. 매일 열리는 음악회. 수많은 예술 전시회.. 저 또한 그녀로 인해 델리의 새로운 면을 봅니다. 그녀는 '간디'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저에게는 단순히 인도의 독립을 있게한 정치 운동가라고 인식되어 있던 인물이지만 그녀의 안내로 가게된 간디 뮤지엄과 간디가 이루고자 했던 이상향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는 교육센터는 새로운 경험 이었습니다. 단순한 인도의 독립이 아니라 전 인류의 보편적인 기본 이념을 추구하는 많은 종교를 분석하고 인류의 이상향을 구상하며 인도인에게 적용시키고자 했던 간디는 진정한 사회주의 학자 였습니다. 영국의 물건을 배척하고자 시작했다는 간디의 물레는 물레를 돌리면서 자기 수양도 하게하는 중요한 교양의 도구 였답니다. (여행중에도 물레를 돌리기 위해 간디가 직접 개발한 휴대용 물레는 지금도 계속 만들어져 하루에 700m를 실을 뽑아내는 성능을 자랑합니다.) 비행기로 전 세계를 하루에 돌고 공장에서 한시간에 수만명의 옷을 기계가 만들어내는 이 시대에 물레를 돌리고 있다니 저는 코웃음이 처음에는 나왔습니다만, 물레를 돌리며 간디의 사회주의 정신을 배우는 인도인들과 그 속에서 열심히 물레를 배우려는 그녀를 보니 나의 편견이 얼마나 속좁은 것이었나를 느끼게 됩니다. 새로운 세계를 알게해준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껴 봅니다. 2006. 9. 14 콜카타에서 만났던 박정규 학생이 델리에 도착해 재회를 합니다. 그의 비자가 얼마 안남아 무리한 일정을 짜던 그에게 인도의 여행이 얼마나 힘든가 알려주고 대사관에 연락해서 그의 일정을 상의 했었습니다면 다행히 제 시간에 델리에 들어 왔군요. 한국을 거쳐 이제 미국으로 간답니다. 제가 8개월이 지나도록 못 떠나는 인도를 단 이주만에 떠나는 그가 좀 아쉽게 느껴졌지만 사람마다 추구하는 바가 틀리니까 별수없죠. 그에게 행운이 있기를 바래 봅니다. 2006. 9. 16 파키스탄 비자가 나왔습니다. 더불어 이란비자도 같이 나왔습니다. 그간 만난 여행자들의 조언으로 파키스탄 에서 이란비자가 잘 안나온다고 해서 델리에서 받기로 한겁니다. 원래는 한달밖에 안주는데 자전거 여행한다고 바득바득 우기니 이례적으로 두달을 주는군요. 역시 문은 두드리는 자에게 관대합니다. 일주일 간의 트랜짓 비자밖에 안나오는 일부 동유럽 권의 여행자들은 부러워 죽을려고 합니다. 이제 그녀와 진짜 헤어질 때가 된겁니다. 다람살라를 떠날때 네팔을 거쳐 델리까지만 같이 다니기로 했거든요. 이제 저는 다람살라로 가서 자전거를 가지고 파키스탄 으로 가야되고 그녀는 리시케쉬 에서 몇개월에 걸친 요가수업을 들어야 합니다. 서로가 계획했던 목표가 있는지금 더이상 같은길을 갈수없는 곳까지 온겁니다. '이제 진짜 헤어져야 되네..' '응..' '이제 헤어지면 또 만날수 있을까?' '아마도.. 서로 마음이 향한다면 또 만나겠지' '약속을 한다해도 여행이란 것이.. 산다는 것이 앞날은 모르는 거잖아..' '그렇지..' 자.. 또한번 결정을 내립니다. 이미 비자가 나왔기에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비자 날짜가 줄어들어 여행이 힘들어 집니다. 특히 이란비자 까지 받아서 빨리 움직여야 하지요. 하지만.. 결정은 애정을 택합니다. '그래.. 이왕 여기까지 같이온거 리시케쉬 까지 가줄께' '그럼 너 비자 줄어들어서 문제일텐데..' '뭐.. 인생이란게 그런거지. 어떻게 되겠지..' 자.. 이렇게 그녀와 리시케쉬 까지 가기로 하고 기차에 오릅니다. 리시케쉬는 또 얼마나 머무르게 될지.. 흠.. 파키스탄과 이란 가기도 전에 비자 만료되어서 다시 델리 와야되는거 아닌가..Posted by Mr. O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