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megazine (kor) Pakistan - 2006. 10 .19 -

megazine kor 19

2006. 10 .19

2006년 6월 1일..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에 도착합니다.
이곳 지역은 PUNJAB 이라 불리는 곳입니다.

이슬람 문명인 파키스탄과 힌두 문명인 인도의 절충지역 같은 곳입니다.
이곳의 종교는 시크교란 것인데 힌두문명의 카스트 제도에 대항해서 만든 종교로 알고 있습니다.

오랜세월 그들은 인간의 평등을 내세우며 암리차르 란 곳에 성지를 세웁니다.

놀라운 곳이더군요. '골든템플'이라는 곳 입니다.
인간의 끊임없는 신에대한 정신적 에너지가 구체화 되는것을 느낄수 있는 곳입니다.

다시한번 인간의 종교에 대한 맹목적인 힘이 어떠한 형태로 모습을 나타내게 되는지 알게됩니다.

6월 3일은 파키스탄으로 넘어갑니다.

처음 만나는 파키스탄의 이미지는..

인도보다는 깨끝하다. 입니다.
이슬람 문명에서 개는 매우 하급한 생물 입니다. 돼지도 마찬가지 이지요.

덕분에 인도와 달리 길거리에 개가 없어서 깨끝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소도 없지요.

국경에서 1시간 남짓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파키스탄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 '라호르' 입니다.

이곳 또한 인도 '타지마할'을 세운 왕이 건설한 성과 정원이 있는 문화유산의 도시 입니다.

하지만 볼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인도로 돌아가기 위해서 이지요.
다시 올 예정이기도 하고요..

라호르에서 하루를 보내고 4일 새벽, 수도인 이슬라마바드로 출발합니다.

가는길은 멋집니다.

대우가 건설했다는 고속도로는 우리나라 보다 좋아 보입니다. 고속버스는 일제 중고이지만 새것같이 보입니다.
인도에 오래 있던 나에게 어리둥절한 현대 문명들 입니다.

대충 수도 근처에 숙소를 잡고 5일날 인도 대사관에 들려 비자를 발급신청 합니다.
원래 파키스탄 에서는 인도비자 잘 안준답니다.

다행히 요즘은 양국간에 분위기가 나쁘지 않아 발급 된답니다.
하지만 3개월 단수밖에 안주네요. 치사하다..

비자 발급받으며 한국대사관에 잠시 들립니다.
한국인은 어디있는지 보이지도 않고 칙칙한 대합실에서 한국을 가기위해 비자 신청중인 파키스탄 사람들만 서성거리는 기븐나쁜 곳입니다.

한 파키스탄 사람이 유창한 한국말로 말하더군요.

'여기 한국대사관에 한국사람 몇명 있어요?
저 6개월간 와 봤지만 한번도 못봤어요.
저 한국에서 일할때 한국여자랑 결혼했어요.
비자 연장하러 파키스탄 왔는데 6개월간 비자 못받고 있어요.

매일 부인이 전화로 언제와? 언제와? 그래요.. 미치겠어요.'

문득 한국에서 같이 일하던 파키스탄 노동자들이 생각납니다.
그들은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국에 돈을 벌러 브로커를 통해 비자를 받은 사람들 인 겁니다.
국가간의 이익문제란 이렇게 힘든 겁니다.

비자는 일주일 뒤에 나옵니다.
그동안 근처 관광을 위해 여권 복사본만 들고 페샤와르행 봉고에 몸을 싣습니다.

이거 위험한 행동 입니다. 바로 폐사와르는 아프가니스탄으로 가는 국경도시 이기 때문입니다. 여권없이 움직이다니 제가 좀 무모했죠.

폐사와르는 멋진 도시 입니다.

동양의 불교문명이 알렉산더 대왕이 동양을 침공할때 가지고 온 그리스 문화와 융합을 해서 간다라 양식이 생긴 곳 이기 때문입니다.

2,300년전 알렉산더 대왕은 이곳 페사와르 에서 20km 떨어진 '카이버 패스'를 넘어 동양으로 들어섰습니다.

박물관에는 근처 도시에서 모인 간다라 미술의 정수들이 모여 있습니다.

역사책에서 이야기만 들었던 간다라 양식..
정말 초기 불교 조각들은 그리스 인을 빼다 박았습니다. 멋진 박물관 입니다.

근처의 2,300년전에 스님들이 불교를 공부한 '탁티바히' 문화유산 방문후 들릴곳은 '카이버 패스' 였습니다.

파키스탄을 거쳐 중앙 아시아로 넘어가는 유일한 통로중 하나..
실크로드 시대 이전부터 많은 모험가들과 상인들이 이용했던 환타지가 살아있는 곳입니다.
지금은 아프가니스탄 으로 넘어가는 국경이지요.

문제는..

보안 이었지요.
파키스탄.. 그중에서도 페사와르는 총기 구매가 자유로운 지역 입니다.

몇십년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했을때 미국 CIA는 이곳 페사와르 에서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사람에게 무기를 무제한으로 공급 했습니다.

그때 가장 무기와 돈을 많이 받은 사람이..
'빈라덴!' 입니다.

미국은 자신들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소련과 대신 싸우라고 했던 겁니다.

어쨋거나 그때 '한사람당 하나의 라이플을!'
이라는 슬로건 하에 뿌려진 총기는 지금도 튼튼하게 남아있고 파키스탄의 가장 큰 골칫거리 입니다.

지금은 정세가 바뀌어 미국은 빈라덴 잡는다고 이곳을 들쑤시고 있고 국경 근처에서는 독립을 요구하는 여러 단체들이 수시로 전쟁을 벌입니다.

아프간 국경인 '카이버 패스'는 관광적으로 중요한 곳이지만 이러한 팽팽한 긴장감으로 일반 여행자 혼자는 가기 힘듭니다.
국가에서 보안요원을 사서 같이가게 만듭니다.

돈 없는 나는 4만원에 달하는 돈을 내지 못하고 몰래 서민들의 봉고에 몸을 싣고 국경으로 향합니다.

국경에 도착한지 5분..
바로 군인에게 붙잡혀서 다시 페사와르로 끌려 나옵니다.
중간에 아프가니스탄 에서 넘어오던 프랑스 인들이 도와줘서 다행이지 여권도 없이 갔다가 큰일날 뻔 했습니다.
프랑스 인이 저보고 미쳤답니다.

정말 무모 했습니다. 다른분은 하지 마세요.

더이상 '카이버 패스'는 환타지 만을 머금고 가볼수 있는 곳이 아닌것 같습니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기독교와 이란,아프가니스탄 으로 대변되는 이슬람 간의 문명의 충돌의 중심지 인 것입니다.

더이상 이곳을 통해 자전거로 중앙아시아를 가보겠다는 꿈은 사라지고 맙니다.
단지 과거에 현실을 탈피하여 모험을 꿈꾸고자 아프가니스탄 으로 넘어가던 사람들이 종종 애용했던 여관에 남아있는 빛바랜 사진속의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오랜 풍파에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퇴색하고 있는 여관과 같이 말이지요..

2006년 6월 9일

수도로 돌아오는 길에 또하나의 문화유산 '탁실라'에 들립니다.

과거 2,400년 전에는 불교를 널리 일으킨 아소카 왕이 세운 불교대학이 있던 곳입니다.
아소카 왕 정말 정복왕 입니다. 인도를 다 차지하고도 모자라 아프가니스탄 까지 차지했으니 말이지요.
그가 불교에 귀의해 여생을 보냈다는 것은 정말 경이로운 일입니다.

그후 알렉산더의 군대는 이곳에 그리스 문명을 싹틔울 대학을 세웁니다.
이곳은 이렇게 여러 문명이 흥망성쇄를 달렸던 곳입니다.

그리고 또하나..

이곳은 중국과 연결되는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시작점 이기도 합니다.
일명 KKH..
멀리 미얀마에서 시작되는 히말리야 산맥은 이곳 파키스탄 북부 까지 이릅니다.

일반 여행자는 이 산속의 계곡 '훈자밸리'를 최고의 경치로 쳐주지만, 자전거 여행자들은 히말리아 산맥을 굽이굽이 흐르는 이 길을 최고의 코스로 쳐줍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산 중의 하나 K2가 여기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간이 없습니다.
자전거도 없습니다.

훗날을 기약하며 수도로 발길을 옮깁니다.

2006년 6월 12일

수도에서 여권을 받은뒤 일사천리로 다시 인도로 향합니다.

워낙 총기가 일반화 되어있고 한달전 파키스탄을 여행하던 한국인 자전거 여행자 역시 강도에게 모두 털린적이 있습니다.

야간 버스는 아직 꽤나 무섭지만 타고 라호르로 달립니다.
중간에 재미있는 광경이 보입니다.

여자혼자 여행은 불가능 할 정도로 엄격한 이슬람 국가.
번듯한 고속도로 휴계실에는 예배를 위한 모스크는 있어도 여자 화장실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가족과 같이 여행하는 여인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일을보고 나타납니다.

'거참 신기하네..'
이슬람 문명의 여인들이 좀 불쌍하긴 하네요.
그래도 파키스탄은 나아 보입니다.
선진 교육을 받는 일부 학교는 매우 자유스러운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탁실라에서 박물관 공부중인 나에게 그들은 밝은 미소로 같이 사진찍자며 호의를 나타 냈습니다.
다른 학교 학생은 엄격한 무슬림 교율에 의해 사진을 거부 하더군요.

라호르 도착은 밤 11시..
재빨리 전에 묶은 숙소를 찾아 한숨을 돌립니다.

다음날 아침인 6월 13일..

아침 9시 반에 열리는 국경에 1착으로 서류를 들이대고 국경을 넘습니다.

인도로 오자 나를 반기는 정전사태..
내 뒤의 사람들은 컴퓨터가 안 움직여 국경 통과가 안됩니다.

누가 인도 아니랄까봐..

오랜 이슬람 나라을 여행한 여행자를 위해 'Cool Beer!!' 라고 소리치는 상인들을 물리치고 암리차르로 향합니다.

12시 역 도착..

12시 5분 발 기차에 올라탑니다.
이때 저는 진정한 인도인이 되어 과감히 표 개찰구에서 새치기를 감행 합니다.

저 인도인 다 되었습니다. 뿌듯 합니다.

파탕곳에 4시 도착..
10분 뒤에는 다람살라 행 버스에 몸을 싣습니다.

오후 7시 반..

이주전 출발했던 다람살라의 숙소에 돌아옵니다.
월드컵 경기를 보던 숙소의 사람들이 저의 기록적인 파키스탄 에서의 비자 신청과 성공, 수도인 이슬라마바드 에서 다람살라 까지 24시간 만의 돌파에 열광을 합니다.

전광석화같이 움직이면 서도 할거 다했던 파키스탄의 1차 여행이 막을 내립니다.

다음 2차 여행시에는 북부로는 안가도 될듯합니다.


Posted by Mr. OH

2006/10/21 21:38 2006/10/21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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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immunsuk 2006/10/22 06:54 # M/D Reply Permalink

    인도 여행때가 생각나는군요.전 태국에 도착해서 엉엉 울었거든요. 이렇게 깨끗한 세상이 있구나 싶어서요. 파키스탄은 가보고는 싶은데 시간이 없어설랑...

  2. 박선희 2006/10/22 18:48 # M/D Reply Permalink

    안녕하세요?
    목사님이 재미있다고 한번 가보라고 해서 왔습니다.
    글은 다 안읽었지만....재미있다기보다는 존경스럽네여.
    어찌 그리 긴 시간을 여행을 하시는지.
    얼굴도 산적과 비슷하게 되기는 했지만 좋아보이고요.
    역시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목사님께서 글이 재미있으니까 센터에 올려보라고 하는데(실은 목사님이 이미 다 올렸어요)...센터 홈페이지 앞면에 링크를 걸까 생각중이거든요.
    맨 첫화면에
    동의하시겠지만 우선 알려드리고, 일주일 기다렸다 답장이 없으면 동의하시는걸로 알고 링크거는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위험한 지역도 가시는것 같은데 몸조심 하시고 즐거운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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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megazine (kor) India - 2006. 10. 19 -

megazine kor 18

2006. 10. 19

이곳은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 근처 입니다.

지난 메일을 보내고 또다시 3개월 반이 지났습니다.

이번에는 오래된 이야기를 끄집어 내 봅니다.

----------------------------------
옛날에 사랑하는 두 남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고 미래를 약속 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결실을 맺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요.

남자는 무능하고 유유부단 했어요. 집안의 부모는 심한 반대를 했지요.
그러나 둘의 의지는 굳건 했습니다.
그들은 미래를 위해 4년간 노력을 했지요.

남자에게는 꿈이 있었지요. 자전거를 타고 세계를 돌아보는 거였답니다.

그러나 여자는 그런것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남자와 가정을 꾸리는 것을 꿈으로 하는 평범한 여자 였답니다.

남자는 둘만의 미래를 이룰수 있다면 꿈을 접을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4년간 열심히 일하며 부모를 설득했지요.

하지만 부모는 요지부동 이었고 둘의 사랑도 점점 식어갔어요.
둘다 보이지 않는 미래에 지쳐버린 겁니다.

그리고는 둘은 헤어졌지요.

그는 절망했습니다.
자신의 능력없음에 절망했고 부모의 완강함에 절망했습니다.

살아가는 의미가 없었어요.

그는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지요.
그리고는 4년간 꽁꽁 싸두었던 꿈을 다시 찾아 헤메기 시작했어요.

1년간 그는 체력을 쌓았어요. 수영을 하며 체력을 쌓았지요.
그는 수영을 할줄 몰랐어요. 무서운 물속에서 발버둥을 치다보면 모든것을 잊을수 있었어요.

1년간 그는 음악을 배웠어요.
한국을 알기위해.. 음악에 심취해 모든것을 잊어버리기 위해 음악을 배웠어요.

1년후 그녀를 우연히 만났을때 그녀는 매우 지쳐 보였어요.
정신의 상처를 치료중 이었어요.

그 우연한 만남에서 전 1년간 배운 음악을 들려줬어요. 그리곤 말했지요.

'안녕.. 난 떠난다. 그리고는 한국에 안 돌아올거야..'

그는 한국의 모든것을 정리했어요. 옷과 책들과 세들어 살던 방..
더이상 한국은 그에게 의미가 없는 절망의 나라 였답니다.
그녀와의 기억이 남아있는 한국의 하늘 아래에서는 살고싶지 않았어요.

그리고는 자전거에 짐을 쌓고 한국을 떠났어요.
그에게 남아있는 물질적인 것이란 자전거와 거기에 실린 짐 뿐이었답니다.

그는 10개월간 세상을 떠돌며 그녀 생각을 많이 했어요.
자신의 무능함 때문에 상처를 입은 그녀를 위해 기도를 했지요.

그로인해 상처입은 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해 하며 여행을 했어요.

인연이 완전히 끊어졌지만 그는 여행이 괴로울 때마다 그녀의 이름을 불렀어요.
인연을 다시 이을 능력도 없고 그 인연을 피해 도망쳤으면서도 몸과 마음이 힘들 때는 그녀와의 행복했던 시간을 그리워 했어요.

어느덧 그는 인도의 한 고승이 살고있는 도시에 도착했어요.
그는 오랜 여행으로 매우 지쳐 있었답니다.
그는 고독과 싸워가며 1년을 여행했어요.

그는 친구로 돌아갈수 있다는 둘의 마지막 이야기를 떠올렸어요.
그때는 한번 사랑을 한 남녀간에 불가능 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어요.

그리고는 전화기를 들었답니다.
친구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
.
.

30초 간의 통화후 그는 깨달았어요.

그녀와의 인연은 완전히 끊어졌음을..
그리고 그녀를 마음에 담아두는 것은 그녀에게도 안좋은 일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리고는 그녀에 대한 인연을 멀리 보이는 히말리야로 날려 보냈어요.

영원히..

------------------------------------

그리고는 그는 새로운 인생을 찾아 열심히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달라이 라마' 라고 속세 사람들이 지칭하는 고승이 살고있는 곳에는 할일이 많았어요.

그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면 좋을까 의논했지요.

'아기를 돌봐주세요..'
'절의 컴퓨터를 고쳐 주세요.'

그는 아이를 좋아 했답니다. 예전에는 좋아하지 않았는데 결혼할 나이가 되자 아이가 좋아지기 시작했답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어요. 처음 해보는 것이었거든요.
그래도 열심히 했어요.

오전에는 아이를 돌보고 오후는 절로 달려갔어요.
그리고는 스님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고 고쳐 주었어요.

한국에서 했던 일들이 외국에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어요.

그리고 저녁에는 인도의 음악인에게 음악을 배웠어요.

하루가 바쁘게 지나갔죠.

그때..

.
.
.

그녀를 만났어요.

그녀는 같은 숙소에 머물고 있었답니다.

그녀와의 첫 대화는 이런것 이었어요.

'와.. 자전거로 여행하시나 봐요. 정말 짐이 많네요.'
'좀 많지요?'
'저도 예전에 자전거로 여행을 좀 해봤어요.'
'정말요?'

그녀는 그곳에서 불교와 요가를 배우고 있었어요.
그녀또한 세계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죠.

띵깡띵깡..
제가 어설프게 음악연습을 할때 그녀는 그 음악이 듣기 좋다고 했어요.

밤마다 지친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오면 둘은 같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둘다 어설픈 영어로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신기하죠.. 서로 어설픈 영어를 쓰다보니 도리어 대화가 잘 되니 말이죠.

그는 여행 처음으로 그녀에게 과거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요.
웬지 그녀에게는 편하게 이야기 할수 있었어요.

그녀는 아무말도 않고 그 이야기를 들어 주었답니다.

그리고 그녀도 마음속 깊이 묻어두고 있던 이야기 들을 그에게 들려 주었어요.
그녀 또한 많은 업보를 안고 살아가고 있었답니다.

둘은 서로에게 이끌렸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나 남자에게는 시간이 없었어요.

그 도시에 온지 2주가 되면 그 나라의 비자가 끝나버리는 시간 이었거든요.

그는 여행을 다시 떠나야 했어요.

하루하루 출발날자가 다가오며 그는 고민을 했어요.
서로를 좀더 알고 싶었지요.

출발 전날..
그는 결단을 내렸어요.

인생의 짧은 시간을 그녀에게 더 투자하기로..

그는 모든짐을 숙소에 놔두고 파키스탄으로 떠났어요.
그리고는 그녀에게 말했어요.

'다시 올께.. 당신과 좀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 여자를 히말리야에 떠나보내고 한 여자를 만난 그곳으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그는 결단을 내렸죠.

그리고는 여행 처음으로 자전거와 떨어졌어요.

그리고는 파키스탄 행 버스에 올랐답니다.
인도비자를 다시 받아 돌아오기 위해..

한국을 떠나 인도까지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안고 살아갈 여인을 생각하며 달렸어요.

그녀가 있었기에 자전거에 대한 꿈을 접을 생각을 했고 그녀와 헤어졌기에 그 꿈이 이루어 지게 되었어요.

인도까지의 여행은 그녀가 그에게 준 마지막 선물 이었지요.

이제 그는 자신의 여행을 향한 첫 발을 디디는 순간 이었답니다.

------------------------------------

이런 이야기가 있답니다..

오래되고도 얼마 오래되지 않은 ..

흔해빠진 진부한 이야기 에요.

Posted by Mr. OH

2006/10/21 21:37 2006/10/21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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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immunsuk 2006/10/22 05:55 # M/D Reply Permalink

    영준씨,

    그랬군요. 좋은 일이네요.시간이 약이랍니다. 그분도 아주 한국에서 잘 살꺼예요. 그리고 이다음에 다시 만나면 외국처럼 친구로 볼 수 있을꺼예요.
    새로 만난 사람하고 자전거 여행 재미있게 하세요. 언제 남미로 넘어오실 계획은 없으신지요?
    어느나라 분이세요? 독일 사람이면 좋겠는데..

    저흰 어제 프레임이 와서 조립하고 모레떠나려구요.
    일단은 자유로와 질것 생각하니까 기분은 좋은데
    걱정도 많이 앞서는군요.

    자주 연락 할 수 있으면 주세요.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2. 김은주 2006/10/23 18:15 # M/D Reply Permalink

    옛날 얘기 읽고, 울 해금 친구에게 그런 사연이 있구나...싶었습니다. 건강하게 여행 잘 하시고, 또 좋은 인연을 다시 만난 듯 싶어 기쁩니다. 떠나실 때는 무거운 맘으로 떠났지만 돌아오실 때는 행복한 발걸음으로, 다정한 손을 잡을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여행 끝까지 늘 건강하시고, 우리 음악 많이 들려주세요~~*^^*

  3. 최경희 2006/10/24 11:10 # M/D Reply Permalink

    영준씨 오랫만이라 더 반갑네요. 항상 웃는 얼굴이 바로 아픔과 상처를 승화시키는 모습이었군요. 출발때부터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말못할 아픔까지 담고 가서 모두 털어버리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삶의 깊은 면까지 깨달았을테니 바로 부처가 아니신가요?!!. 인도에 오래 머무실 생각인지요. 여행잘하고 연습 함께 할 시간이 빨리 오기를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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