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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철 2007/07/28 15:58 # M/D Reply Permalink
잘 지내고 있냐~~~?
여기다 글 쓰는게 맞는지 모르겠다~~~ ^^;
암튼 자전거생활에서 네기사 읽었다~~~
잠깐 한국에 들어왔더구나... 연락 좀 하지... --
너정도 여행했으면 정말 슬럼프가 올만도 하겠다...
그래도 참 대단하다...
난 이번에 쌍둥이아빠가 되었다... 아들 쌍둥이지...^^
가끔 너랑 일본여행했을때 생각하면...
유럽을 한번 자전거로 일주하고싶다는 생각은 들지만...
뭐 대학시절때부터 생각만 하고 있지... ^^;
이제는 힘들겠지... 쩝... ^^;;
항상 건강조심하고 생각나면 연락이나 함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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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gazine kor 25 2006. 11. 12 모헨조다로 유적은 세계에서도 가장 오래된 인류의 발상지중 하나 입니다. 유적옆에 있는 호텔에 짐을 놓고 유적 구경에 나섭니다. 그 기원은 4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금의 남부 이라크에 문명을
만든 인류는 해안선을 따라 동쪽으로 향하다가 인더스 강을 만나 이곳
모헨조다로에 이라크와 동일한 문명을 만듭니다. 인더스 강이 주는 비옥한 토지는 곡물재배를 용이하게 만들어 생활을
풍요롭게 만들었습니다. (이곳에서 나는 쌀이 꽤 맛있습니다.) 아직도 10% 밖에 발굴이 안되었다고 하지만 규모도 크고 규격벽돌로 만든
거리등이 문명이란 단어를 쉽게 떠올리게 해줍니다. 텐트치고 캠핑이 된다는 현지인 말에 박물관장에게 이야기 했더니 위험하다며
방갈로를 저렴하게 준다고 이야기 하는군요. 오후에 호텔에서 짐을 옮기다가 사고가 났습니다. 박물관 인부들이 도와준다고
자전거를 막 움직이네요. '안되!!! 만지지 마!!' 우지직.. . . 아.. 트레일러 연결부위가 그들의 호의에 감사하며 부러져 버렸습니다. 자전거에 대하여 하나도 모르는 많은 현지인들. 호의 베푼다고 하다가
망가트린 것이 한두번인가.. 이번에는 크게 일 터트렸군요. 자전거가 트레일러와 연결이 안되니 달릴수가 없습니다. 휴.. 이걸 어떻하나.. 11.15 수리나 용접이 안되는 파트. 하지만 없으면 여행이 불가능한 파트. 꼼작없이 발목이 묶였습니다. 일단 트레일러 본사에 수리여부와 부품을 받기위해 인터넷을 시도하는 동안
모헨조다로에 머물기로 합니다. 식당이 영 아닙니다. 인터넷 하러 근처 마을로 가서 야채를 사다가
매일 밥을 해 먹습니다. 오전은 유적과 박물관에서 공부를 하고 오후는 마을로 나가 인터넷을 시도 합니다. 첫날은 지역 전체 정전으로 불가.. 두째날은 컴퓨터가 모두 망가져
있어서 직접 수리하다가 포기. 3일째가 되어서야 인터넷에 전화로 연결이 됩니다.
아.. 정말 오지 입니다. 본사에서 답변이 오기까진 못 움직이지만 유적 공부에는 더없이 좋은 기회입니다.
박물관장은 내 개인 가이드가 되어 줍니다. 11.17 본사에서 부품을 보내준다는 답변이 옵니다. 예상 시간은 10일. 모헨조다로에서 기다릴까도 생각했지만 장기 투숙객이 되는 저를 곱게 보지 않는군요. 프랑스에서 조사팀이 온다며 방을 비워달라는 관장. 흑.. 돈 없는게 죄입니다. 또다시 경찰차에 실려 다음 목적지 '카라치'로 가기위해 근처 도시
'라르카나'로 이동합니다. 자전거 망가져 못 움직이는데 경찰이 있어서 아주 좋네요. 도시에 도착하자 마자 다시 달라붙는 경찰들. '나.. 내일 카라치 가. 버스로 가. 이 호텔에서 어디도 안갈께..' 이제 신드주 룰은 다 알았습니다. 경찰들에게 안심시킨후 그냥
가보라고 호텔에서 내보냅니다. 11.18 아.. 악몽의 날 입니다. 트레일러가 망가져 자전거로 이동 못하는 상황. 오토릭샤를 불러 짐을 다 밀어넣고 전 릭샤를 자전거로 따라 터미널로 갑니다. (릭샤가 작아서 자전거와 저까지는 못 탑니다.) 버스 지붕에 자전거를 올리고 남부의 끝 '카라치'로 이동합니다. 파키스탄 돈은 다 떨어지고 달러로 요금을 깎고 깎아 올라탄 버스.
저녁 6시가 되어서야 카라치에 도착합니다. (파키스탄은 ATM 사용이 극히 제한적 입니다. 외국인의 카드는
시티은행 밖에 안되는데 시티은행은 단 세 도시에 5개 정도의 ATM 만 가지고 있습니다.
이곳을 못 찾으면 카드는 무용지물 입니다.) 해는 저무는데 아는 호텔은 단 하나.. 유스호스텔. 낡은 아파트가 늘어선 기분나쁜 도심지를 가로질러 짐을 실은 릭샤를 죽을힘을
다해 전 자전거로 따라갑니다. 도착한 유스호스텔.. 직원이 날 맞이하는 태도가 좀 이상합니다. '여권 보여 주시오..' '여기..' '당신은 여기 머무를수 없습니다. 딴데로 가보십시오.' '왜요? 방이 없어요?' '카라치는 지금 위험합니다. 몇달전 한 여행자가 사고가 난 뒤로
우리는 외국인을 안 받습니다.' '웃기지 마시오. 여긴 국제 유스호스텔 인데 학생증 있는 날 안받으면 어떻합니까?' '미안합니다. 나가 주십시오.' 해는 지고.. 돈은 없고 짐은 산더미인데 자전거는 못 움직이고.. 아.. 이런 난관은 여행 처음 입니다. '그럼 경찰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소 전화한통화 합시다.' '여기서는 안됩니다. 나가서 딴데서 거십시오.' '여보쇼.. 밤도 어둑하고 난 오늘 처음왔오. 전화 한통화만 돈내고 쓰자는데..' '안됩니다. 나가 주십시오.' 휴.. '그럼 오늘은 이동하기 위험하니 하루만 자고 내일 새벽에 나가면 안됩니까?' '나가 주십시오. 미안합니다.' '그럼 내가 짐을 여기놓고 자전거로 다른 호텔을 알아본 다음에 짐을 가지러 오겠오.' '당장 나가라는데 왜 자꾸 다른말 합니까? 당신일은 우리 알바 아니오. 당장 나가시오!!' 서러운게 아니고 어이가 없는 냉대. 카라치 오면 대도시 이기에 호텔로 고생할것 같아 미리 알아본
유스호스텔이 이런 대우를 하다니.. 기가 막힙니다. '길거리에서 다시 릭샤를 불러 짐을 싣고 호텔을 찾아 나섭니다. 처음와본 도시.. 내 짐은 릭샤꾼이 딴마음 먹고 속력을 올려 달아나면
모두 끝입니다. 밤거리를 40km로 달리는 릭샤를 따라 자전거로 호텔 20 여개를 가보지만
모두 외국인 거절. 거절의 방법도 가지가지. 방이 없다. 로컬 호텔이다. 밤이 늦어 경찰에 보고를 할수없다.
옆 호텔로 가봐라. 등등.. 어느덧 3시간을 헤매고 밤 10시가 넘습니다. '아.. 안되겠다. 포기다. 더이상은 몸과 정신이 못 버틴다.' 여행자의 마지막 자존심을 버리고 별 3개의 고급호텔로 가자고 소리칩니다. 가격은 무려 1박에 3만원!! 여행 첫날 중국에서 호텔에 잔 이래 만원을 넘겨
자본적이 없는 나 인데.. 3시간을 안 도망가고 호텔을 찾아봐 준 릭샤에게 6달러를 쥐어주니 씩 웃으며
1달러 더 달랍니다. 아.. 악몽의 하루 입니다. 11.20 호텔은 고급이나 바늘방석이 따로 없습니다. 하루에 3만원!! 가난한
여행자의 심장을 후버 팝니다. 잡지사에 원고를 보내며 인터넷으로 알아본 카라치의 상황은 절망적 입니다. 잦은 테러와 납치,살인. 미국 영사관 폭탄테러도 3개월전 있었고 가끔
여행자가 묵는 호텔로 무장강도가 들어 온다는 곳. 거기에 9/11 테러이후 많은 아프간 난민들이 파키스탄 으로 밀려들었고
그중 대다수가 이곳 신드주에서 살며 마약과 무기거래로 삶을 이어 나갑니다. 이 혼잡함 속에 시민들은 타지역 인에게 극도록 경계하며 자기자신 만을 위해
살아야 하는 무법지대가 된 겁니다. 신드 정부는 호텔에 외국인이 묵으면 여권,비자,입국도장을 복사해 3개 기관에
당일로 신고하도록 법을 만들었답니다. 받아서 골치아프고 신경쓰이고 사고나면 큰 책임지는 외국인은 기피 1호인 겁니다. 나중에 알아본 정보로는 극히 일부의 저렴한 호텔이 받기는 하는데 가이드
북이 없으면 찾는것은 불가능 이더군요. 낮에 박물관을 돌아다니며 곰곰히 생각해 보지만 도저히 10일간 머물면서
소포를 기다릴 재간이 없습니다. 도시 사람들도 여간 쌀쌀 맞은게 아닙니다. 카라치 근처의 문화유산에 다녀오려 했으나 교통편도 모르겠고 모두들
나 몰라라 해서 포기 합니다. 영사관에 전화로 호텔문제를 물어 보았더니 무기 박람회로 호텔비가 비싸져서
그렇다는 엉뚱한 답변.. 휴.. 영사관 사람들이 하루 3000원 짜리 호텔을 자본적이 있을리가 없죠.
물어본 내가 바보. 국가 공무원이 원래 그렇죠. 파키스탄 관광청에 가서 답변을 요구했더니 하는말.. '옆 건물에 가시면 방명록과 호텔 리스트가 있습니다. 방명록에 그 문제를
적어 놓으시면 처리가 될겁니다. 호텔은 그 리스트를 참고 하십시오. 그쪽으로 가시지오.' '이보시오!! 내가 방명록하고 말하러 이곳에 온거 아니오. 당신들은 관광청의
직원들 아니오. 당신들이 모르면 누가 압니까?' 먼산만 바라보며 딴청 피우는 직원들. 자기 곤란하면 입 다무는 것은 파키스탄 인들의 특징. 아... 짜증 납니다. 11.21 호텔을 나와 100km떨어진 또 하나의 대도시 '하이드라바드'로 이동합니다. 이곳에는 싼 호텔이 있기를 바래는 마음 입니다. 현재 상황은 카라치와 하이드라바드의 사이에 있는 문화유산을 가야 하는 일. 망가진 트레일러 파트를 받기위해 한곳에 10일 이상 머물러야 하는 일. 다시 릭샤에 짐을 싣고 온 도시를 돌아다니며 호텔을 찾으나 마찬가지 입니다.
이 빌어먹을 신드주!! 한 호텔의 사장말이 일품 입니다. '당신 뭐요? 여권 보여주시오' '당신은 누군데 내 여권을 보여달라고 하오?' '여권을 보여주기나 하시오!' '당신이 경찰이면 보여주겠오. 당신 경찰이오?' '아니오..' '그럼 못 보여주오.' '그럼 볼일없오. 내 호텔에서 나가시오.' '당신이 주인이오? 여권 보여주면 이 호텔에 묶을수 있오?' '안되오.. 나가시오.' 와.. 타지역 사람에게 이렇게 냉대를 퍼붓는 신드주 사람들.. 속이 터집니다. 결국에 일이 터집니다. 좁고 공사로 난리통인 도시를 자전거로 다니다가 릭샤를 놓쳤습니다. 내가가진 짐은 모두 릭샤에 실려있고 내가 지금 가진것은 카드 한장과
카메라 한개, 그리고 여권. 릭샤가 혼잡스럽게 오가는 길가에 주저앉아 노란 하늘만 바라봅니다. '모든 짐을 잊어 버렸구나..' 난 내가가진 물질적인 모든것을 잊어 버렸건만 이곳 사람들은 이 이상한
여행자를 힐끔힐끔 바라볼뿐 저마다 갈길만 재촉합니다. 이 도시에서 전 죽어나가도 별 상관없는 이방인일 따름인 겁니다. 주저앉아 마음을 비워봅니다.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도 도와줄 이
없는것이 여행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있는 사실. '그래.. 그 많은 무거운 짐을 가지고 다니느라 이 고생이었어. 이제
모든게 없어졌으니 편하잖아?' '아직 나에겐 자전거와 카드와 여권이 있어. 적어도 한국으로 돌아가야할
정도는 아니잖아?' '짐이 없으니 자전거 여행이 날아가겠구먼.' 생각의 전환은 종이한장. 마음이 편해집니다. 여유를 찾고나니 해결의 실마리가 보입니다. 일단 다른 릭샤를 잡아타고 어딘지는 모르나 사라진 릭샤가 가려고 했던
어렴풋이 떠오르는 호텔이름을 대며 출발합니다. 골목길을 돌고돌아 한 호텔에 도착하니 그곳에 릭샤가 내 짐을 싣고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려 한시간 가량을 말이지요.. 사람들은 아직 인심이 남아있는데 점점 그것을 각박하게 만드는 곳이
신드주 같습니다. 이사람은 아직 인정이 남아있네요. 나 같으면 그냥 짐 들고 집으로 갑니다. 짐을 다시 본 순간 안도감과 다시 이 짐을 가지고 고생해야 한다는
아픔이 교차합니다. '인생의 짐은 버릴수도 없는 업보인가 보다..' 호텔의 이름은 '시티게이트'. 하이드라바드 에서 가장 비싼 호텔이며 유일하게 현재 외국인을 받는 곳 입니다. 가격은 35,000원. 카라치보다 더 비싸네요. 신드주는 돈은 돈대로 나가고 잘 풀리는것 하나도 없습니다. 이곳에서 돈 아끼는 것은 포기하고 빨리 다른 주로 가는것이 낫다는 판단이 듭니다. 또한번 여행자의 자존심을 버리고 100km 떨어진 문화유산에 가기위해
차량 렌트를 예약합니다. 다시 30,000원 소모. 일반 교통편 알아보는 것은 포기합니다. 11.22 비싼 호텔이 꼭 좋은것은 아닙니다. 식당에서 먹은 저녁이 체해서 밤새 설사로 잠을 설칩니다. '아.. 차량 예약 취소하고 하루 쉬어?' '아니야. 신드주에서 하루 쉰다고 나을리 없어. 빨리 문화유산 보고 탈출해야지.' 설사로 부서지는 몸을 약으로 달래며 렌트카에 오릅니다. 에어콘 빵빵한 도요타 '코로나'. 돈이 좋긴 좋습니다. 버스 한대 안보이는 험한 시골길을 잘도 달려 날
유적까지 데려다 줍니다. 인도 문화권의 마지막 문화유산 입니다. 사자한 왕이 세운 '지마 마스지드' 모스크 와 이슬람 문명중에 가장
큰 '코알리' 공동묘지. 이로써 무굴제국의 유산은 모두 보았습니다. '야!! 너 보려고 온갓 고생 다했다.' 몸이 아파서 제대로 집중이 안됩니다. 보는둥 마는둥 하고 다시 호텔로 돌아옵니다. 아픈 몸이 아우성 치는 속에서도 기차역을 찾아가 다음날 파키스탄
여행의 출발지인 '라호르'행 표를 예매 합니다. 파키스탄 에서 내가 아는 유일한 안식처는 그곳밖에 없으니까요.. '하이드라바드' 에서 이란을 가면 버스로 16시간. '라호르' 에서 이란을 가면 버스로 30시간이 걸립니다. 파키스탄 중간까지 와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래도 가야지.. 그곳에서 밖에 오래 머물수 있는곳이 없다.' 11.23 아직 설사로 무거운 몸을 이끌고 기차에 오릅니다. 생각보다 깔끔한 기차. 인도와는 딴판입니다. 모두 중국제 이군요. 파키스탄과 중국은 요즘 긴밀한 관계에 있답니다. 기차는 내가 몇주간 달려온 길을 잘도 거슬러 올라갑니다. 내가 잤던 주유소도 스쳐 지나가고, 토론을 벌였던 대학교도 지나갑니다. 이럴거면 뭐하러 자전거로 여행을 하는지.. 허탈함이 무겁게 마음을 내리 누릅니다. 10시간의 여행끝에 다시 출발점으로 복귀. 세번째 방문인 '투어리스트 인' 호텔에 다시 짐을 풀어 놓습니다. '아.. 다 귀찮은데 그냥 다시 인도로 넘어가 그녀나 만날까..' 파키스탄의 남부 '신드주' 이제 쳐다보기도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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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gazine kor 24 탄력받아 하루를 이곳 아르메니아 '바나져'에 있는 호텔에서 쉬며 글을 몰아치기로 했습니다. 간식을 사러 슈퍼에 가니 '팔도도시락' 러시아 수출버젼이 있군요. 아.. 싸다. 220드람 (500원). 맛은 역시 한국라면이 최고. 일주일전 먹은 소련 라면하고는 비교가 안되죠. 다시 슈퍼에 가서 내가 점원에게 한말. '이 진열대에 있는 라면 다 주세요.' 흑.. 맛있는 한국라면에 눈물 흘리며 글을 씁니다. - 파키스탄 두번째 여행 - 2006. 10.21 망가진 타이어를 교환하느라 새벽 2시 까지 꼬박 자전거를 고쳐 몸이 많이 피곤합니다. 하지만 파키스탄으로 넘어가야죠. 이미 한번 다녀온 곳이고 숙소도 알고 있으며 남아있는 파키스탄 돈도 있어서 마음이 편합니다. 때는 10월.. 바야흐로 유라시아를 횡단하기 가장 좋은 계절이랍니다. 국경 검문소는 오토바이와 차량 여행자들로 북적이고 있습니다. 페러글라이딩을 등에 진 여행자도 보이는군요. 전 세계를 돌며 하늘을 나는것이 취미랍니다. 세상에는 참 별난놈 많아요. 몇개월 전보다 더 잘 손질된 듯한 길을 따라 라호르에 도착에 전에 묵었던 호텔에 듭니다. 구관이 명관!! 10.22 파키스탄은 '라마단'기간 입니다. 신을 생각하며 한달 가량 해가 있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먹지않는 이슬람의 커다란 행사기간 이지요. 이거 많이 무서웠습니다. 자전거 여행자에게 안 먹는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낮에는 음식을 만들지도 않고 팔지도 않으며 무언가 먹는다면 종교를 막론하고 따가운 눈총과 언쟁에 휩쓸릴 여지까지 있습니다. 다행히 늦게 파키스탄에 입국하여 3일후면 끝난답니다. 어떻게 야채는 구해서 호텔에서 밥을 해 먹습니다. 속을 든든히 하고 전에 보지 않았던 문화유산인 '로타스' 성으로 출발. 도심지 한가운데 있는 로타스 성과 모스크는 타지마할을 세운 '사자한'왕의 작품 입니다. 건축왕 이란 칭호는 쉽게 받는게 아닙니다. 멋진 모스크와 성을 유유히 거닐며 나와 종교적인 논쟁을 하고싶어 말을거는 이란 성직자 청년들과 기꺼이 논쟁을 시작해 줍니다. 10.24 다음은 라호르 약간 위쪽에 있는 '로타스 요새' 문화유산 입니다. 자전거로 갔다가 다시 내려 오기는 좀 멀고 버스로 다녀오고자 합니다. 아뿔싸.. 내가 인도 다녀왔다고 그새 파키스탄 버스의 시스템을 잊었네요. 정류장에 도착해 확인도 안해보고 로타스 간다는 나를 미는 사람들에게 이끌려 버스에 타니 버스는 텅 비어 있군요. 파키스탄 버스는 만석이 안되면 절대 출발 안합니다. 자.. 원래 몇몇 버스를 알아보고 사람이 다 찬 버스를 탔어야 하는데 나의 실수. 돈은 이미 냈고, 안내인은 사라졌고 별수 없습니다. 3시간을 만석이 될때까지 기다립니다. 버스는 오후 늦게서야 로타스에 도착합니다. 다음날 구경간 로타스는 멋진 유적입니다. 직경이 12km가 넘고 높이가 50m가 되는 부분도 있으며 지금도 성내에 300가구가 사는 거대한 요새 입니다. 북쪽에서 몰려오는 많은 침략을 지형을 절묘하게 이용하여 튼튼한 요새로 무굴제국을 방어했다는 느낌이 팍 와닿습니다. 일명 '함락된 적 없는 무적의 요새' 입니다. 하루를 밖에서 보내고 호텔에 오니 같은 도미트리의 여행자들이 나를 걱정해 줍니다. 내가 안들어와서 모두 걱정했다는 겁니다. 통성명도 제대로 안한 사이지만 여행자 끼리 걱정해주는 마음씨에 감동해 버립니다. 기대안했던 친절함은 따뜻한 것 같습니다. 2006. 10. 26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기 가장 좋을 계절이 이때란 것은 많은 여행자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파키스탄에서 인도로 넘어가야 하는 라호르에서 유일한 여행자들 만을 위한 숙소인 이곳은 북새통 입니다. 지금 머물고 있는 자전거 여행자는 나까지 5명.. 모두 홀로 세계를 떠도는 여행자 입니다. 놀랍습니다. 유라시아를 횡단하는 자전거 여행자가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게 되다니.. 유라시아 여행이 대단한 것으로 알고있던 저에게 이 숫자는 결코 대단한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아일랜드,프랑스,독일,아르헨티나,한국.. 국적도 다양하고 프랑스 인은 여인입니다. 모두 사막과 산맥을 수십번 넘나들었던 베터랑 입니다. 모두의 자전거를 보면 각 나라의 민족성을 알수 있을 정도로 저마다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경험입니다. 기념사진 찰칵.. 저녁에는 라호르의 명물 수피즘 음악을 들으러 갑니다. 쓰! 레! 기! 라 생각되는 문화 입니다. 낮에 간 모스크의 종교 음악은 들어줄 만 했지만 저녁늦게 벌어진 음악은 광란의 현장 입니다. 모두 대마초에 쩔어 눈을 뒤집고 있고 드럼과 트럼펫의 괴상한 조합과 반복되는 빠른 리듬앞에 모두 집단 환각에 휩싸입니다. 이런걸 음악이라 하다니.. 재미있다고 즐거워하는 유럽인들과 이야기도 하기 싫네요. 10.27 또다른 라호르의 문화유산 '살리마르 정원'에 다녀옵니다. 건축왕 '사자한'의 또다른 작품으로 귀족들의 정원 입니다만 지금은 가족 피크닉 장소가 되어버린 곳입니다. 멋있는 장소이긴 하나 아이들은 난간을 잡고 뜀뛰기를 하며 유적을 파손시키고 있습니다. 외국인인 나를 놀리며 내 주위를 뛰어 다닙니다. 휴.. 문화유산이 이렇게 처참히 방치되다니.. 시민에게 편안하게 개방된 이 상태가 더 나은 일일까요? 잘 모르겠네요. 2006. 10 .30 자.. 라호르를 출발해 남으로 달리기 시작합니다. 북부는 이제 안가기로 하고 목표는 남쪽 끝에 위치한 행정수도 '카라치' 중간에는 세계적인 문화유산 '모헨조다로'가 있습니다. 하루에 120km를 달리는 순조로운 전진끝에 유적지 '하라파'에 이르릅니다. 서기 4000년 전의 유적으로 '모헨조다로'와 같은 맥락의 유적입니다. 시골길을 돌고돌아 갔건만 너무 오래된 유적이라 온갓 시대의 유적이 뒤섞여 혼란뿐인 유적입니다. 흠.. 그저 그렇군. 저녁에는 호텔을 못찾아 길가에서 한참을 헤멘끝에 한 주유소에서 재워달라고 합니다. 흔쾌히 매니져 방을 주는 파키스탄 인들. 파키스탄의 시골에는 호텔이 거의 없습니다. 대도시 외에는 여행자의 편의시설이 거의 없지요. 이해안되는 이런 사회를 설명하는 파키스탄 인들. '파키스탄 인은 친구가 참 많다. 파키스탄 어디나 모든 이들은 많은 친구를 가지고 있으며 여행시에는 항상 친구집에서 잔다. 한번 결혼식을 보라. 그 친구를 다 부르다가 1000명이 모이는 결혼식도 보통이다. 그래서 호텔이 안된다. 그래서 호텔이 없다' 이 어처구니 없는 현실. 진짜인지 농담인지는 모르나 호텔이 없는것은 사실. 다행히 친절한 파키스탄 인들로 오늘은 편히 잡니다. 저녁늦게 나를 부르는 주유소 사장. 한국말을 유창히 하는 친구가 나를 찾습니다. '나.. 한국에서 5년 일했어요. 지금은 돈 벌어서 여기서 상점 운영해요' 파키스탄 노동자는 어디가나 쉽게 찾아볼수 있습니다. 내 걱정과는 달리 착한 사장 만나 잘 일했다는 그.. '자전거로 한국에서 여기까지 왔어요? 와.. 그렇게 오래 자전거 타면 남자만 가지고 있는거 아파서 못쓰지 않아요?' (이건 아주 완곡한 표현. 실제로는 아주 직설적인 대화가 오갔습니다. 여성분이 언짢아 할까봐 순화시킵니다.) 예상못한 주제에 당황할 틈도 없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연애도 못해 봤겠네요? 내가 아가씨 불러줘요? 같이 가서 아가씨가 따라주는 술 마시고 연애 할래요?' 이건 경악할 일. 파키스탄은 이슬람의국가.. 성매매와 술은 최고의 죄악이 아니었는가!! '에.. 다 옛날 말이에요. 요즘은 다 해요. 걸리지만 않으면 괜찮아요.' 파키스탄은 이런 쪽으로 서양놈들것 잘 배우고 있는 선진화된 이슬람 국가 같습니다. 2006. 11. 1 예상과는 참 많은 차이를 보여주는 파키스탄을 보며 '물탄'에 들어옵니다. 몇개월전 한국의 자전거 여행가 '이웅이' 님이 무장강도를 만나 돈을 다 털린 곳이지요. 그간 만난 파키스탄 사람들은 모두 친절합니다. 내 느낌으로는 그다지 위험한 곳은 아닌것 같은데 그런 큰일을 당한 이웅이 님은 운이 없던 걸까요? 의야감이 듭니다. 이곳에 와 식사를 하다보니 라호르 에서 만난 자전거 여행자가 보입니다. 나보다 몇시간 먼저 출발한 그는 이제 기차를 타고 이란으로 간답니다. 나와같은 사이클을 타고 다니고 내가 좋아하는 나라인 아일랜드 인이라 정이갔던 그에게 축복을 빌어 줍니다. 저녁늦게 한번 파키스탄의 영화관을 구경갔던 저.. 며칠전 한국에 살던 파키스탄 인 못지않게 충격입니다. 버스터미널 앞의 '시티즌 극장'이라는 커다란 극장. 포스터는 분명 미국영화 '할로우 맨' 이나, 옆에는 이상야릇한 포스터도 있고 온갖 연령의 남자들이 가득차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니.. 화면에는 옷하나 안걸치고 엉겨붙는 두 배우가 큼지막히 나옵니다. 서양의 포르노!! 파키스탄 공공 영화관에서 틀어주는 포르노 비디오 입니다. 억압된 성!! 그것을 암암리에 분출시키는 남성. 그런 남성들의 이슬람 교율에 어긋나는 행동을 눈감아 주는 정부. 그리고 차도르로 얼굴을 가리고 집안에서만 살아가는 파키스탄 여성.. 이것이 파키스탄 이슬람의 실체였던 겁니다. 길거리에는 여성이 안 보입니다. 남성들 만을 위한 나라입니다. 간혹 보이는 여성은 항상 남성과 같이 행동합니다. 충격의 연속인 파키스탄의 문화 입니다. 11.3 물탄을 벗어나 다시 전진을 계속. 이제 작은 도시에 있는 영화관도 한번 들어가 봅니다. '오호라.. 이곳은 영화를 제대로 틀어주는군. 미국의 액션영화야..' 영화가 끝나고 나가려는 나를 부르는 매표소 아저씨. '방금건 별로고 이제 한편 더해. 보고 가..' 아.. 어쩐지 사람들이 안 나가더라. 또다시 화면을 메우는 살색과 극장에 울려퍼지는 신음소리.. 여자가 사회생활을 못하는 것이 당연한 파키스탄 에서 가능한 일인듯 싶습니다. 11.6 이제 파키스탄도 많이 내려 왔습니다. 왼쪽으로는 인도까지 이어지는 '타 사막'이 한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다행히 고속도로는 그 사막 가장자리를 지나나 길에 쌓인 모래와 목화를 나르는 낙타들은 이곳이 사막임을 실감케 합니다. 오늘도 호텔 발견 실패. 주유소에 텐트치고 자기로 합니다. 주유소를 지키고 있는 소련제 라이플로 무장한 경비원. 이제 파키스탄에서 하도 많이 보아서 무덤덤해진 광경 입니다. 밤에 내 텐트까지 지켜준다니 더 좋죠. 하지만.. 밤 12시에 내 텐트를 비추는 불빛과 고함소리. 뭐냐..?@!#$% 밤에 순찰나온 주유소 사장이 신기한 놈 왔다는 경비원 말에 구경하자는 겁니다. 얼굴은 웃으며 차 마시자고 하지만 밤 12시에 잠이 깬 나에게 한손을 내밀며 뒤로는 들고있는 권총. 헤.. 이보쇼.. 난 자야하오.. 그리고 그 총 보기싫소. 그냥 무시하고 다시 잠에 빠져 듭니다. 11.8 펀잡 주의 마지막 사막도시 '데레미야 칸'에서 대학교에 초대받아 파키스탄의 정치, 경제적 문제에 대해 토론을 벌이는 하룻밤을 지낸다음 '신드주'에 들어섭니다. 이 빌어먹을 신드주.. 처음부터 심상치가 않습니다. 갑자기 엉망이 되어버리는 도로. 길거리에 늘어선 판자집과 사리를 뒤집어 쓴 여인들. 갑자기 많이 눈에 띄는 소들. 내가 다시 인도에 온거 아닌가 싶습니다. 저녁에 묶게된 한 트럭 터미널 식당의 옥상. 텐트치고 저녁을 먹습니다. 호텔 참 찾기 힘듭니다. '카라치'에서 영어를 배웠다는 한 점원의 날 미친놈 취급하는 말. '이곳에 왜왔소? 이곳이 위험한 곳인줄 모르오? 정신 나갔구먼' 펀잡주의 느긋하고 친절한 파키스탄 인들에게 익숙해진 나는 대꾸해 줍니다. '그러는 당신은 왜 이런 위험한 곳에 살고 계시우? 빨리 딴 지방으로 가시구려..' 11.9 '신드주' 이틀째.. 오전부터 느낌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만나는 경찰차마다 나를 세우고는 신원조사에 열성적 이군요. 웃으며 대꾸해 주며 계속 나아가지만 오후가 되니 경찰차 한대가 나를 따라오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웃으며 뭐하냐고 물어보지만 못하는 영어.. 그냥 앞을 손가락질 하며 가랍니다. 점점 짜증나기 시작합니다. 2m 뒤를 졸졸 따라오는 경찰차. 이제 따라오지 말라고 고함을 질러 봅니다만 막무가내 입니다. '덴져러스..' 한마디만을 연발하며 나를 졸졸 따라오는 경찰차. 사라지나 싶으며 다른 경찰차가 와서 인수인계 하고 나를 따라옵니다. 좀 쉬려는 나에게 빨리 가라고 손을 내저으던 경찰은 결국 첫 도시 서커 에 도착해서는 호텔까지 잡아줍니다. 그리고는 어디서 온 영어하는 사람. '신드주는 위험합니다. 이곳에 며칠 머무를 겁니까? 그동안 경찰이 호위합니다. 호텔에서 떠나지 마십시오. 내일 간다면 8시에 경철아 데리러 오겠습니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 난데없이 호텔에 반 감금 됩니다. 11.10 서커는 인더스 강을 끼고있는 역사있는 도시입니다. 만.. 이런 분위기 속에 머물고 싶지는 않습니다. 8시에 내 방문을 두드리는 경찰에게 밀려 다시 출발을 합니다. 역시나 나를 따라오는 경찰차.. 1:1 에스코트를 내 평생 받아볼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차량 한대에 3명이 탔으니 1:3 이군요.) 6시간을 끈기있게 졸졸 내 자전거만 따라오는 경찰.. 그들의 끈기에 감탄합니다. 내가 멈추면 같이 멈추고 밥을 먹으면 같이 먹습니다. 파키스탄 경찰 정말 할일 없나 봅니다. 도착한 다음도시 '시카르프'도 상황은 마찬가지. 또다시 호텔에 반 감금되고 맙니다. '여봐요!! 내가 죄인이오? 난 다 필요없요.' '다 당신의 안전을 위한 겁니다. 이 신드주는 위험합니다. 모든 외국인은 보호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경찰서장이 나를 경찰서에 부르더니 술을 권하며 이거저거 캐묻습니다. 이슬람 국가에서 경찰서에 앉아 경찰서장이 주는 술을 마시다니.. 정말 오래 살아볼 일인것 같습니다. 밤에는 아예 경찰관 한명이 내 문앞을 지키고 밤을 세웁니다. 와.... 말이 안나옵니다. 2006. 11. 12 아침 8시에 내 방문을 두드리는 경찰서장. 밖에는 경찰차 한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웃는 서장의 얼굴에 쓰여있는 글. '웬만하면 그냥 타.. 서로간에 편하고 좋잖아?' 이곳에서 80km 떨어진 인류 4대 문명의 발생지중 하나인 '모헨조다로'.. 더이상 모헨조다로 까지 자전거로 가겠다고 고집부릴 힘도 없습니다. '그래요.. 타고가요.' . . . 하지만.. 가는길은 멉니다. 경찰차는 각자 자기 구역이 있고 그곳을 못 벗어 납니다. 가다가 다른 경찰차를 만나면 내 자전거와 짐은 옮겨 실리고 또 5km 남짓을 실려 갑니다. 가다가 구역은 벗어 났는데 다른구역 차량이 안보이면 오토바이를 불러 난 자전거를 타고 오토바이가 나를 따라 옵니다. 갈아타고 짐을 올리고 내리고 자전거에 붙였다 떼었다가 몇번이던가.. 10번까지 세다가 포기 했습니다. 경찰 트럭에 던져지며 자전거와 가방은 엉망이 되어 갑니다. 중간에 만난 유창한 영어의 경찰. '아니? 왜 당신은 경찰차를 타고 이동하시오? 우리도 바쁘오..' '내 말이 그말이요. 나도 자전거 타고 가고싶지만 경찰이 안된다고 합니다.' '아니? 누가 안된다고 합니까? 파키스탄에서 여행자는 자유를 누릴수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자전거로 가고싶소.' '음.. 하지만 해가 얼마 안 남았군요. 편하게 트럭으로 가시지요. 출발!!' 이런.. 말을 말던가.. 오후 6시.. 드디어 모헨조다로 입구에 도착. 아.. 여기 오느라 참 고생 많이 합니다. 신드주.. 정말 경찰 말대로 위험한 곳인지 갈피가 안 잡힙니다. 조금씩 경찰들의 말에 말려들어 보이는 사람마다 테러리스트로 보이기 시작하는 영준 입니다.Posted by Mr. OH
- 인도 여행의 마지막 장 입니다. - 아르메니아를 벗어나 조르지아로 가는 마지막 여정의 끝에서 한 호텔에 머물며 버너로 커피를 끓여 마시며 새벽 1시에 글을 씁니다. 아.. 춥다. 밖은 영하 11도. 호텔은 물도 안나오고 손바닥 만한 전기곤로가 난방의 전부. 글을 쓰다보니 인도가 그리워 집니다. 2006. 9. 16 리시케쉬로 이동 합니다. 참나 인도에 유명한 곳은 다 가게 되는군요. (이건 자만 입니다. 인도는 큰 나라 입니다. 못간곳 엄청나게 많습니다) 바야흐로 시기는 요가의 계절. (이랍니다. 요가 선생을 본국에서 몇년간 했었다는 그녀의 말..) 델리에서 리시케쉬로 가는 버스는 세계 여러곳에서 온 수련생들로 북적입니다. 유럽, 남미, 동남아.. 전 세계의 사람들이 다 오는군요. 2006. 9. 23 리시케쉬.. 신성한 갠지스 강의 근원지 근처에 위치해 있으며 히말리아 산자락에 위치해 예로부터 인도의 수많은 성인들이 도를 수련하던 곳입니다. 북적이던 바라나시와는 또다른 느낌을 주는 인도인의 마음의 고향중 한곳 입니다. 세계의 유명한 요가선생들은 세계 곳곳에서 요가교육을 하다가 9월이 되면 이곳인 요가의 고향에 돌아와 추위가 시작되는 12월 까지 강습을 합니다. (선진국이 돈을 많이 주기 때문이라는 실질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리시케쉬는 신성한 곳이라 육식이 금지되는 곳입니다. 강가 한적한 곳에 숙소를 잡고 매일 야채로 음식을 해먹으며 그녀는 요가수련에 들어가고 전 매일 신비한 기가 넘치는 강가를 산책합니다. 요가.. 참 저에게는 생소한 분야 입니다. 하지만, 보고접한 것으로 전 요가가 인간의 마음의 문을 여는 좋은 수련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나에게도 요가를 권하지만 전 할수가 없습니다. 요가는 좋은 정신 수련 입니다. 그 경지를 느끼면 정말 새로운 정신의 문이 열리게 됩니다. 그러기에 수련을 시작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그 경지를 알게 된다면 저의 자전거 여행이 지속될 수가 없기 때문이죠. 지금 이곳에서 저의 자전거 여행이 멈출수는 없는 겁니다. 그저 매일 갠지스 강의 기운을 받으며 마음을 정진하며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2006. 10. 1 리시케쉬 근처의 하리월드에 오늘은 가봅니다. 바라나시에 버금가는 힌두교의 성지. 매일 수만명이 이곳에 와 목욕을 하고 밤 6시에 밝히는 신성한 불을 보고 가는 곳입니다. 힌두교의 본질..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이제 이들의 이런 행동을 어렴풋이 이해를 할수 있습니다. 리시케쉬 에서도 매일 밤마다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소망과 타인의 축복을 촛불에 실어 강물에 떠내려 보내며 인도인들은 기도합니다. 근처의 수많은 기도원 에서는 많은 인도인이 신을 축복하며 자기 수양에 전념합니다. 힌두교는 종교인 동시에 자기수양의 한 방법인 겁니다. 인도인은 수천년간 이런 방식으로 현새의 고통을 이겨내며 삶을 이어 왔습니다. 저도 인도인 다 되었나 봅니다.. 2006. 10. 2 오늘은 간디의 생일입니다. 그녀를 요가학원에 데려다 주고 호텔 리셉션에서 신문을 펴드니 간디의 생일을 축하하는 전면 광고가 눈에 띄입니다. (많은 요가수업이 호텔 옥상에서 이루어 집니다) 자그마한 체구의 구부정한 몸을 가진 간디. 그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독립 인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인도의 종교문제를 전 인류의 문제로 인식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헌신했던 사회학자.. 결국 종교에 사로잡혀 있던 같은 인도인에 의해 쓰러진 비운의 성인. 쓰러지며 그역시 자신이 받들던 인도의 신을 부르짖었습니다. 이 신문속에서 열심히 물레를 돌리는 간디를 보며 그의 인생철학을 되새겨 봅니다. 전 그같이 될수 있을까요? 절대 불가능 이겠죠? 2006. 10 .3 오늘은 근처의 대도시 '데라둔' 이란곳에 방문 합니다. 그녀는 화학약품을 사용치 않는 자연농업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참 팔방미인 관심도 많은 그녀 입니다. 인도에는 노벨상을 받은 자연농업의 위인이 있습니다. 화학약품과 유전자 변형에 의해 점차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현대농업에 맞서서 자연의 유전자를 보호하고 그 종자를 전 세계와 협력하여 나은 방향으로 만들어가는 센터가 이곳에 있습니다. 아.. 이것도 저에게는 참 생소한 분야입니다. 농장과 사무실을 들려 '나르단야'란 노벨상 수상자인 여인이 만들어가고 있는 종자를 받아 기뻐하는 그녀.. 그 종자로 저녁에 밥을 해먹는데 솔직히 얼마나 좋은줄은 모르겠네요. 십년, 이십년에 표가나는 것들은 아닐겁니다. 인류의 건강까지 걱정하는 그녀.. 과연 내가 그녀와 같이 인생의 발걸음을 같이 할수 있을지 부담되기 까지 합니다. '아.. 난 인생 헛살았나 보다. 겨우 자전거 여행 하나에 목숨거는 난 너무 스케일이 작은것 같아.' 2006. 10 .5 어느덧 리시케쉬에 온지도 20일. 그녀의 짐만 들어주고 가겠다는 게 20일을 머물게 되었군요. 뭐.. 예상은 했습니다. 의외로 좋았던 리시케쉬. 매일 직접 밥을 해먹고 기도원에서 명상에 잠기고 갠지스 강의 정기를 받아 들였습니다. 이제 더 늦추면 파키스탄의 여행이 불가능 해 집니다. 그녀에게 이제 떠날 시간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래.. 이제 진짜 헤어질 시간이구나.' '그래도 예정보다 꽤 오래 같이 있었네.' '응..' '고마워.. 인도에 와서 삶에 소중한 기쁨을 가지게 해 주어서..' '나야말로.. 자전거 여행에 지친 나에게 넌 다시 힘을 주었어' '나도 그냥 요가 그만두고 자전거 사서 널 따라갈까?' '안돼.. 자전거 여행은 고독한 길. 아직 혼자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았어. 혼자 고생을 하며 좀더 많은것을 느끼고 싶어. 넌 이해할 거야.' '그래.. 그래야 겠지. 나도 요가를 좀더 배워야 해. 이게 지금 내가 갈 길이야.' '....' '....' '6개월 뒤에는 요가가 끝나겠지?' '그래.. 6개월 뒤면 넌 어디쯤 가 있을까?' '잘 모르겠네. 터키쯤이 아닐가?' '그때면 내가 너의 여행에 합류할 수 있을까?' '그때면 아마 내가 혼자 보고싶었던 세계를 많이 보았을거야. 특히 이슬람 세계를 말이지..' '그때면..' '그래.. 그때라면 같이할수 있을거야..' 기약없는 약속을 합니다. 6개월 뒤.. 과연 합류를 해서 같이 자전거 여행을 할수 있을까요.. 버스에 오르는 나를 배웅하고 요가학원으로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제 짐이있는 다람살라로 향합니다. 여행 처음으로 이별의 아픔을 느껴봅니다. 또 볼수 있을지.. 인생이란 참으로 미래를 알기 힘듭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그녀의 뒷모습을 마음속 깊이 세겨 놓습니다. 2006. 10 . 6 다람살라 도착. 참 정겨운 곳입니다. 이제는 여행지가 아니라 제 고향같은 느낌 입니다. 절에서 비구니 스님들 팬티가 민망하게 걸려있는 자전거도 받아오고 그동안 한국과 폴란드 에서 도착해 있는 소포도 수령 합니다. 3개월 만인가요? 모두들 저가 돌아온 것을 기뻐하고 보육원 아가들도 저를 잊지않고 달려와 하늘높이 던져달라고 저에게 기어 오릅니다. 하지만.. 한가지가 안보이네요. 그녀입니다. 다람살라는 변함없이 활기차고 포근한 느낌을 줍니다만 그녀가 안보이니 좀 서운한 느낌이 듭니다. 2006. 10. 7 제가 네팔을 다녀온 기간은 우기 입니다. 다람살라는 다질링 같이 곰팡이 도시가 되어 있었고 제 짐은 그 곰팡이의 공격으로 만신창이 입니다. 모든 짐을 빨고 널고 정리 합니다. 여행 처음으로 모든 짐을 정리하기 위해 숙소 옥상에 널어봅니다. '휴.. 내가 이 모든걸 다 짊어지고 1년 넘게 여행했단 말이지..' 어처구니 없고 기가 막힙니다. 말이 필요없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전 참 인생의 짐이 무거운 사람 같습니다. 2006. 10. 12 리시케쉬의 숙소에 모르고 남겨놓았던 때밀이를 그녀가 보내 주었습니다. 하하.. 한국인의 필수품인 때밀이. 이거 없으면 여행이 힘듭니다. 때밀이와 함께 여행중 먹으라고 보내준 여러 음식을 보며 진짜 그녀와 떨어졌음을 실감합니다. 지금은 겨우 버스로 10시간 거리지만 이제 매일마다 점점 그 거리는 벌어질 겁니다. 2006. 10. 14 자전거 수리 돌입. 분해, 청소, 조립, 점검, 시운전. 무책임하게 떠났던 주인이지만 변함없이 잘 따라주는 자전거 입니다. 주인의 애정이 식었다고 불평하나 안하는 참 묵묵히 날 따라오는 좋은 놈 입니다. 이제 다시 이놈을 타고 먼길을 떠날 준비가 됩니다. 2006. 10. 15 나의 출발을 롯빠 보육원의 페스티벌이 막습니다. 한국에서 보내온 기증품을 티벳 사람들에게 파는 바자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전 사진사.. 이제는 저를 이웃처럼 생각해주는 보육원 아가들의 부모들과 어울려 물건을 팔고 사진을 찍고 밥을 먹으며 티벳과 한국의 정을 느껴봅니다. 내가 가장 귀여워하는 아가 '텐진 테첸' 이제 부모가 먼저 저에게 아가를 맏겨버립니다. 아빠가 질투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어디서나 나를 발견하면 아장아장 걸어와 안기는 아기.. 이런 티벳 사람들과 이별을 해야 한다니 마음이 아픕니다. 2006. 10. 17 다람살라에 온지도 11일. 역시 무서운 곳입니다. 한번오면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가 버립니다. 무의미한 것도 아니고 의미있게 보내는 시간이라 아쉽지는 않지만 또 다람살라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붙들려 버리는 나를 발견합니다. 이제는 진짜 다람살라를 떠나는 날. 많은 사람들이 나의 자전거에 축복을 빌어주는 하얀 스카프를 감아줍니다. 괜시리 눈물이 글썽입니다. 또 언제 올수 있을가요.. 과연 달라이 라마 님이 살아계실때 또한번 이곳을 올수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달라이 라마가 계신 곳으로 가서 정문에서 크게 절을 합니다. '당신 덕분에 인생의 좋은 인연을 이곳에서 만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래오래 건강 하세요..' 자전거로 달려 내려오는 내리막길 저너머 다람살라가 점차 희미해 집니다. 2006. 10 .18 파키스탄 으로 가는길은 비교적 순조롭습 니다. 오랫만에 쓰는 근육들이 좀 아우성 칩니다만 금방 적응 되겠죠. 오랫만의 주행인데 트레일러가 약간 말썽이라 자동차 수리소에서 수리해 가며 파키스탄을 향애 달립니다. 2006. 10. 20 우기인 몬순이 마지막 기승을 부립니다. 퍼붓는 비속을 간만에 라이딩 해봅니다. 이윽고 도착한 '암리차르' 다시 신비한 기운이 넘치는 '골든템플'에 머물고 싶지만 퍼붓는 비속에 도심으로 가는 길이 모두 막혔습니다. 바퀴가 절반이상 물에 잠기는 도로. 도저히 자전거로 지나갈 수가 없습니다. 오후 5시에 길을 찾다가 해는 지고 타이어 하나가 더이상 못간다고 하더니 주저 앉아 버립니다. 체크하니 큼지막한 구멍.. 인도가 마지막 선물을 달라고 떼쓰는군요. 수리 불가